얼마전 제 19회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끝났다. 한국과 베트남이 아쉽게 8강 문턱에서 탈락해서 많이 아쉬웠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 때부터 축구경기에 새로운 규정이 생겼다. 이른바 ‘VAR(Video Assistant Referee)’ 비디오 판독시스템이 그것이다. 배구나 야구에서는 일찍이 도입된 제도로써 심판의 오심을 줄이고자 하는 제도이고 그 실행여부와 판단에 대해서 절대적 권한이 심판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심판의 권위와 결정을 존중해 주기위해서 시행된 것이라고 해야 옳다.
반면에 명백한 오심은 사후에 심판을 심판대에 올려서 더 이상 심판직을 못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심판에게는 그 경기에 관한 모든 걸 부여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에 따른 책임도 붙어 다닌다.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시원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의 심판인 판사는 어떤가,
이탄희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2018년 3월 대한민국 판사라면 누구나 원하는 법원행정처 기획심의조정관으로 발령받았다. 비밀번호가 있는 파일을 전임자로부터 인수받게 되는데 그 안을 열어본 이 판사는 ‘판사의 뒷조사‘를 한 목록표와 그런 일을 하는 자리라는 걸 알고 곧바로 사표를 제출해 버린다. 양승태 대법원은 11일 만에 그를 지방으로 발령을 낸다. 이게 거의 1년여 동안 온나라를 뒤흔든 ’사법농단 재판거래 및 판사블랙리스트 사건‘의 단초이다.
이 판사는 왜 그 꽃길(?)을 마다했고, 그런 일들이 왜 자신 앞에 놓이게 되었는지 숙명으로 받아들이겠다면서, ’법관이 추구해야 할 것은 사적인 관계나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공적인 가치‘라는 글을 법원에 남기고 두 번째 사표를 제출하고 올 1월 결국 법원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4일 구속 수감되었다. 이 나라의 ’법과 양심’을 송두리째 요절내 버린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구속되고 나자 아주 희한한 재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증거조차 불충분하고, 전례도 없는 현직 도지사를 유죄 판결하여 수감시켜 버렸다. 그곳은 전임자 없이 1년 반 동안 도정공백인 그런 곳이다. 이명박 시절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특활비 뇌물을 두고, 주고받은 3인이 모두 인정하는 걸 판사는 그 일 한가운데 있는 그에게 ‘무죄’라고 석방해 버린다. 경우는 약간 다르다지만 공소내용 10가지 중 9개가 무죄라고 판결한 1심 내용을 항소심에서는 9개가 유죄라고 180도 다르게 판결해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수감시키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고대 페르시아에 캄비세스 2세라는 왕이 있었다. ‘눈에는 눈’으로 유명한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5세기 바빌론의 일이고, 캄비세스왕은 그 후 1천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그림으로 더 유명한 부패 판사 처형에 대한 이야기다. 재판관이 ‘재판에 관한 범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했을까, 당시 재판관 시삼네스(Sisamnes)의 재판비리가 발각되자, 캄 왕은 ‘재판관의 껍데기를 산채로 벗겨 재판관 의자에 깔도록 했다. 그리고 그 의자에 그의 아들 오타네스를 재판관에 임명해 앉혔다고 한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한민족의 선택은 크게는 ‘굴종하느냐, 저항하느냐‘ 두 가지였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이 또한 천태만상이다. 일제 고등계형사 노덕술, 그는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부역자 제 1호로 지명되어 체포당하자 전 국민이 환호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사흘 뒤 이승만은 그를 특별석방해서 헌병대에 배치시킨 뒤 반공투사로 변장시켜준다. 오늘날 전해져 내려오는 고문기술 70%는 그가 만든 것이라고 하며, 1986년 박종철이 당한 물고문도 그의 대물림이었다.
반면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항일운동단체가 김원봉의 ’조선의열단’이다. 이는 영화 ‘밀정’,‘암살’등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남북교류가 한창인 요즈음 북한의 항일독립운동사가 간간이 전해 온다.
남한에서 배워왔던 항일독립투쟁의 역사는 어쩌면 아주 미미해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북한에서도 조선의열단의 항일투쟁사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에서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한 뒤 집에 돌아와 3일 동안 밤낮으로 통곡했다는 약산 김원봉의 이야기가 건국 100주년이 지나가는데도 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2,500년 전보다 못한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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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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