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니 떡국을 먹는다고 나이를 먹지는 않지만 새해가 되니 나이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를 먹는 맛에 떡국을 먹던 시절이 있었고, 나이 먹는 부담에 떡국이 반갑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수십 번의 설 떡국을 먹었고, 앞으로 또 수십 번의 떡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간혹 공평한 것들이 있다. 나이가 그중 하나이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 것, 더하기만 있을 뿐 빼기가 없다. 재산도 명예도 지위도 때로 뒷걸음질 치지만 나이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앞으로만 나아가고, 점점 오래 나아간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나이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드는데, 개인도 사회도 맞을 준비가 덜 되어있다. 나이의 파도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인생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국가가 노년의 삶을 보장해주는 연금제도는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연금제는 오랜 동안 독일의 자랑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불안정해도 “한 가지 안전한 것은 연금”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1889년 연금제를 도입할 때 비스마르크는 65세를 고령의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 독일의 평균 기대수명은 45세였으니 그보다 20년을 더 산 사람은 노인도 상노인이었다. 실제 연금 수혜자는 가뭄에 콩 나듯 소수였다. 그에 준해 만들어진 것이 미국의 소셜시큐리티 연금이다. 1935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소셜시큐리티 제도를 도입하던 당시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62세였다. 60대 너머까지 장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근로자 42명이 은퇴자 한명의 연금을 담당하는 꼴이었다. 소셜시큐리티의 원래 명칭이 OASDI(Old Age Survivor and Disability Insurance, 고령생존자 및 장애 보험)라는 사실이 그 내용을 잘 보여준다.
평균수명이 80 즈음인 지금, 상황은 바뀌었다. 젊은이는 적고 노인은 넘쳐나는 노인천국이 되고 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은 하루 1만 명꼴로 70세가 된다. 고령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저출산으로 젊은 인구는 날로 줄어드니 연금의 앞날은 불안하다. 독일이나 미국이나 현재는 근로자 3명이 은퇴자 한명을 맡는 꼴인데 앞으로 젊은 층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령의 거대한 파도가 계속 밀려들면 소셜시큐리티도 메디케어도 언제까지 버텨낼지 알 수가 없다. 정부의 은퇴지원 프로그램을 믿지 말고 각자 알아서 기나긴 노년을 살아야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노년 계획이 더 이상 여유로움의 상징이 아닌 이유이다. 아울러 나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꿀 때가 되었다.
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75세를 ‘늙음’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이제까지 노령의 시작으로 여기던 65세로부터 10살을 올렸다. 건강관리, 영양, 위생의 개선으로 60대 중반은 노인으로 보기에 너무 젊다는 판단이다. 65~74세는 노년 이전 시기, 75~89세는 고령, 90세부터는 초고령으로 일본 노인학회는 재정의 했다.
그러니 개인도 사회도 ‘65세 은퇴’라는 생각은 버리라는 조언이다. 60대 중반~70대 중반 연령층을 ‘은퇴’라는 이름으로 퇴장시키는 대신 유급이든 자원봉사든 일을 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일본 노인학회는 충고한다.
미국에서도 ‘노인’ 기준은 비슷하다. 관련조사에서 베이비부머들은 73세를 ‘늙음(Old)’이 시작되는 나이로 꼽았다. 60대까지는 중년 - 건강한 노년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인식이다.
그런 맥락에서 50대를 인생의 중간 기착지점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그 나이면 대충 인생의 성적표가 나오는 시점. 평생 해오던 일을 계속 할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를 정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근 30년, 망망대해 같은 시간의 파도를 맞아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건강, 돈, 친구 그리고 재미와 의미.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을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시기이다. 수십 년 하던 일도 새롭게 그래서 재미있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학 펄만은 올해로 바이올린 연주 68년이다. 5살부터 연주해 73세인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늘 ‘처음처럼’ 연주를 한다고 고백한다. 젊은 시절에는 연주를 잘 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음악 속에 담긴 영혼에 집중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조크를 곁들인다.
“이 나이가 되면 자꾸 잊어버려요. 완전히 잊어버렸으니 모든 곡을 처음처럼 연주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잊어버리며 새로 발견하며 살다 보면 노년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
권정희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소셜시큐리티 택스를 1%만 올리면 기금 부족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 표 떨어질까봐 택스 올리자는 이야기는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들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