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산물·농산물 등 풍부한 항구, 기름·향신료 진한 본토와 달리 재료 본연의 맛 살린 요리 많아
한국은 중국 본토와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홍콩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 3위다. 올 들어 10월까지 홍콩을 찾은 한국인 방문객 수만 약 132만명. 홍콩에서 여러 볼거리를 찾아가고, 쇼핑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홍콩 음식 즐기기는 뒷전인 경우가 허다하다. 낯선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기름과 향신료 등을 많이 써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선입견. 홍콩에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담백하고 감각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유명 레스토랑이 많다. ‘미식의 도시’ 홍콩의 진면목을 알면 홍콩 관광 일정이 식도락으로 채워진다. 홍콩에는 미슐랭가이드로부터 별을 받은 ‘스타 레스토랑’이 63곳(3스타 6곳, 2스타 11곳, 1스타 46곳ㆍ2018년 기준)이나 있다.
동서양의 조화로운 맛, 홍콩의 광둥 요리
중국 요리는 지역에 따라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쓰촨(四川), 광둥(廣東) 네 가지로 크게 구분된다. 중국 남부에 위치한 홍콩은 광둥 요리에 기반한다. 150년 영국 식민지를 거치고 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홍콩만의 맛이 생겼다. 외국과의 문물 교류가 활발한데다 서구의 요리법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동서양의 맛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음식 문화를 갖게 됐다. 1960년대 경제 성장을 발판 삼아 홍콩은 독보적인 ‘미식의 도시’로 거듭났다. 중국 요리의 보석으로 꼽히는 딤섬(點心)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광둥 지역은 기후가 온화한 남쪽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해산물과 농산물 등 식재료가 풍요로웠다. 상업이 발달한 홍콩은 광둥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주로 수입하는데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 등 육류에서부터 게, 새우, 조개 등 해산물까지 다종다양한 재료를 가져올 수 있다. 아스파라거스 등 서양식 채소와 가지, 콩, 버섯, 오이 등 신선한 야채들도 많다.
다양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재료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발달했다. 간을 조금만 해 신선함을 살리고, 기름을 적게 사용한다. 센 불로 단시간에 볶기보다 찌거나 데치는 정도로 조리한다. 박진수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 셰프는 “중국의 다른 지역은 해산물이나 신선한 재료가 귀해 요리 맛을 진하게 하기 위해 기름이나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지만 홍콩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가 많다”며 “해산물과 야채를 찌거나 데치거나 삶은 뒤 소스에 버무려 내는 것이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홍콩 현지에서 즐기는 정찬
홍콩에서는 제비집이나 샥스핀 등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재료가 들어간 코스 요리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정찬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다. 올해 5월 문을 연 홍콩 센트럴 문화 유적지 타이퀀 내에 있는 올드베일리도 광둥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다. 문화 유적지 안에 있어 주위 경관부터 인테리어까지 고풍스럽다. 이곳에서 추천하는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전채요리로 오리를 푹 끓인 국물에 수육을 얹은 수프가 나온다. 한국식 곰탕처럼 고소한데 감칠맛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딤섬인 샤오롱 바오(小龍包)도 전채요리로 나온다. 종잇장처럼 얇게 빚은 만두피 안에 곱게 다진 돼지고기와 함께 육수를 넣어 찐 중국식 만두다. 만두피가 찢어지면서 터져 나오는 진한 육즙이 입 안 구석구석까지 퍼진다. 전채요리로 미각을 일깨웠다면 강한 맛을 가진 육류를 맛볼 차례다. 주요리로는 길이 15㎝안팎의 식용 새끼 비둘기에 간장 등의 양념을 바른 후 살짝 훈제한 비둘기 구이가 나온다. 그 위에 중국 10대 명차(名茶) 중 하나인 용정(龍井) 찻잎을 뿌렸다. 찻잎은 특유의 잡내와 잡미를 말끔히 잡아주고 식감을 살린다. 부드럽고 담백하다. 부리부터 발끝까지 형태를 갖춰 식탁에 오르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통째로 요리해 내놔야 완전한 음식을 내놨다는 문화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반찬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야채 요리들도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가지와 콩잎을 살짝 데쳐 특제 소스에 버무린 야채 볶음은 짭조름하고 개운하다. 디저트로는 아주 고운 알갱이가 느껴지도록 곡물을 물과 함께 갈고, 계화꽃 분말을 넣어 만든 차가 나온다.
홍콩 센트럴 스탠더드차터드 건물 지하에 있는 모트32는 홍콩에서 가장 감각적인 레스토랑 중 한 곳이다. 광둥 요리가 기반이지만 베이징 덕 등 중국 정통 요리를 서양식에 맞춰 조리해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주꾸미 튀김과 오이무침으로 입맛을 돋운다. 바삭바삭한 튀김에 새콤한 오이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다. 모트32의 딤섬도 먹어봐야 한다. 다진 야채와 새우, 게살 등의 반죽에 반숙한 메추리알을 넣고 검은 송로버섯 가루를 올린 쇼마이나 농어살과 콩잎을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찹쌀 반죽으로 감싼 덤플링은 보기에도 예쁘지만 주요리로도 손색 없을 정도로 맛이 조화롭다. 이곳의 주요리는 사과나무 장작으로 42일간 구워낸 베이징 덕과 이베리코 돼지 바비큐다. 베이징 덕은 미리 예약 주문해야 하고, 이베리코 돼지 바비큐도 하루 한정 수량에 한해 판매한다. 달콤한 소스를 입혀 구운 오리와 돼지고기는 촉촉하면서 부드럽다. 기름이나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아 느끼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 홍콩 영화를 연상시키는 레스토랑 분위기나 1851년 미국 뉴욕의 첫 중국인 잡화점이 있던 모트 스트리트 32번지에서 유래된 명칭은 이곳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구룡반도 하버시티에 위치한 푸롱(芙蓉)은 맞은편인 홍콩섬 야경을 감상하면서 정찬을 즐기기에 좋다. 플레이팅부터가 인상적이다. 현대 미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이곳 요리들은 뉴욕이나 파리의 모던 레스토랑 요리에 가깝다. 전채요리는 얇게 저민 오이와 베이컨을 돌돌 감싸 리본처럼 만들어 낸다. 차가운 요리로 입 안을 개운하게 한다. 이어 닭고기 수프가 나오고, 주요리로는 칠리 새우와 정육면체 모양의 큐브 스테이크가 식탁에 오른다. 한 점씩 정갈하게 놓인 재료에 후추 소스와 겨자 소스 등이 가늘게 뿌려져 있다. 탱탱한 새우살과 부드러운 쇠고기는 간이 알맞고 깔끔하다. 아스파라거스와 강낭콩, 새우 등을 쪄서 소스를 넣은 야채 곁들임은 보기에도 예쁘지만 식감도 즐겁다. 디저트로는 천연 과일향이 나는 초콜릿이 나온다. 각 요리는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맛도 빠지지 않는다.
홍콩 센트럴에 있는 잉지클럽은 지난해 문을 열자마자 미슐랭 별 하나를 받은 ‘스타 레스토랑’이다. 이제는 유명무실해졌지만 영국 식민지 시절 고위 장교 등의 사교 모임이었던 잉지클럽에서 상호명을 따왔다. 이곳도 정통 광둥 요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죽순과 버섯 등을 푹 삶아 낸 야채 수프를 시작으로 달콤한 간장 소스를 얇게 발라 구운 닭고기가 주요리다. 여기에 콩잎을 삶은 뒤 소스 등에 볶은 야채 볶음도 짭조름하면서 달콤하다. 다양한 딤섬을 모은 ‘딤섬 콤비네이션’은 샤오롱 바오부터 견과류와 조갯살, 돼지고기, 야채 등을 넣어 식감을 살린 덤플링 등 각양각색의 딤섬을 먹어볼 수 있다. 기름기 없이 고슬고슬한 안남미 볶음밥과 국물이 없는 면 국수가 깔끔한 뒷맛을 담당한다. 더부룩하지 않은 푸딩 젤리가 디저트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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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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