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칠리아 정통 요리 ‘아란치나’ ‘알라 노르마’
정통 시칠리아 음식인‘아란치나’ 안에 밥과 완두콩, 라구 소스가 버무려져 있다. <잇쎈틱 제공>
일상에 지칠 때면 우리는 제주도를 떠올린다. 왠지 매일 생활하는 뭍을 떠나 비행기로 바다를 넘어 착륙하면 한 시간 사이에 다른 나라에 온 듯 모든 게 새로울 거라 기대한다. 제주의 방언이 신기하고 낯설고, 매일 뭍에서 먹던 돼지고기도, 미역국도, 그 이름부터 달리 부른다. 새로움은 제주에서 먹는 음식의 맛을 더해준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아니 섬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걸까.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닌 듯싶다. 각 나라마다 섬에 대한 사랑은 환상과 꿈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하면 피자와 파스타의 나라라고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들은 지역마다 자기의 색깔이 뚜렷함을 강조한다. 장화 모양의 나라 남쪽 아래로 쭉 내려가면 장화 코 부분에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아 섬이 있다. 시칠리아는 거의 다른 나라라고 생각될 만큼 음식도 언어도 그들만의 색깔이 있다. 태양이 가득한 이 곳은 맛있는 자연이 가득한 축복받은 땅이다. 레몬과 오렌지, 포도, 피스타치오, 올리브 등 갖고 있는 자원이 모두 맛있는 식재료가 되는 곳이다.
한국에 많은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지만 그 중 시칠리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츄리 츄리(Ciuri Ciuri)’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엔리코 올리비에리와 필리파 플로렌자(피오레) 커플이 우리에게 축복의 맛을 선보인다. 10년 전에 와인 소믈리에로 한국에 와서 이탈리아 와인을 널리 알리며 한국을 사랑하게 된 엔리코는 로마 출신이지만 시칠리아에서 와인을 배우면서 시칠리아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레스토랑을 드나들며 요리를 배운 피오레는 시칠리아의 맛이 온 감각에 저장돼 있다. 둘은 새로운 변형의 시도보다는 원래의 맛을 존중하고 유지하려 노력한다. 또한 시칠리아의 삶을 음식으로 말하고 있다. 4년 전 시작 당시 이탈리아 음식 중에서도 굳이 시칠리아 음식을 택한 것은 대담한 용기와 함께 음식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리라.
시칠리아 음식의 시작은 단연코 ‘아란치나(arancina)’이다. 먹음직스럽게 튀겨진 동글동글한 테니스 공 모양의 음식은 겉모양으로 봐선 안에 뭐가 들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이프로 살짝 찌르는 순간 경쾌하게 바삭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부드럽게 썰리며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새어 나온다. 그 안에 노란 밥과 함께 라구 소스와 완두콩이 안에 숨어있다. 라구 소스는 보통은 엄마들이 슬로우쿠커에 고기와 토마토를 넣고 밤새 푹 끓여두고 먹는, 단연코 제일 인기 있는 이탈리아 소스 중 하나이다. 소스는 샤프란이 들어간 밥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고르곤졸라 치즈에 프로슈토를 넣어도 부드럽고 진한 맛의 아란치나가 완성된다. 아란치나는 단순한 요리처럼 보이지만 동글동글하게 튀겨진 리조또 같다. 안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고, 리조또의 한 그릇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공 하나로 만들어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식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칠리아에서는 일터에 가는 사람들이나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도시락이었다.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트레체 파스타 면. / 토마토 소스에 가지를 곁들인 파스타‘알라 노르마’. <잇쎈틱 제공>
미식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는 먹는 행위가 배를 채우는 이상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은 때론 행복을 주는 예술로 인정받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은 한 끼 밥을 먹는 즐거움과 행복을 넘어서 그 음식이 탄생된 배경과 문화까지 흡수하게 한다. 트레체 파스타 면을 봉지째 들고 와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소개하는 엔리코의 목소리에는 시칠리아의 자부심과 사랑이 느껴졌다. 노르마는 빨간 토마토 소스에 가지를 곁들인 파스타다. 좋은 장인이 만든 트레체 파스타 면이 꽈배기 도넛처럼 꼬여있어 소스와 함께 버무려져 섞이는 순간 파스타 안쪽까지 소스가 쏙 스며든다. 푹 익은 파스타 보다는 알단테 정도로 익혀 우아한 트레체의 모양 그대로 살려 먹어야 진정한 시칠리안이라 할 수 있다. 부드러운 가지에는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의 고소함과 향이 베어 입안을 풍부하게 감싸준다. 가지 껍질만을 얇게 까서 튀긴 토핑은 물컹하고 부드러운 가지의 단편적인 맛에서 벗어나 또 다른 식감을 즐기게 한다. 쫄깃하면서도 씹는 맛이 고소하다.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가 1831년에 선보인 오페라 ‘노르마’에서 이름을 땄다. 워낙 유명하고 사랑 받는 오페라였기에 맛있는 이 파스타를 먹는 순간 사람들은 ‘Pasta alla Norma’(노르마의 파스타)를 외쳤다. 파스타를 먹는 순간 1800년대의 시칠리아인들이 음식을 예술에 비유할 만큼 음식에 대한 애정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알고 있기에 츄리츄리의 노르마는 시칠리아 방식 그대로 소금에 숙성된 단단한 리코타 치즈만을 고집한다. 혹 비슷한 듯 다른 치즈를 사용하여 노르마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지만 엔리코와 피오레는 한국에서도 진짜 노르마의 전통을 알리고 싶어해 전통 치즈만을 고집하고 있다.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는 단연코 카놀로(cannolo)다. 통상 카놀리(cannoli)라고 부르는데 이는 카놀로의 복수 형태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사 중에 거의 달콤한 음식이 없기 때문에 디저트만큼은 기분 좋은 달콤함을 충분히 즐기려고 한다. 바삭하고 단단한 파이프 모양으로 튀겨진 페이스트리 안에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고소한 크림이 양쪽가득 채워준다. 그 위에 말린 오렌지나 피스타치오를 예쁘게 뿌려준다. 모양도 예쁘지만 맛은 더 끝내준다. 딱딱하다 싶을 정도의 바삭하게 튀겨진 페이스트리는 씹는 순간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크림을 고소하게 잡아준다. 여기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곁들이면 완벽한 시칠리안 스타일로 마무리가 된다.
얼마 전 츄리츄리는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ㆍ이탈리아 와인&레스토랑 가이드)에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 부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감베로 로쏘는 한국에서 파인다이닝, 정통 이탈리아 부문, 정통 이탈리아 피자, 와인바 4부문에서 각각 단 한 곳씩만 선정한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대해 엄격한 평가를 하기로 유명한 감베로 로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음식에 대한 인증은 끝난 셈이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와서 그들의 맛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위치만 한국에 있을 뿐 츄리츄리는 이탈리아 요리를 대표한다. 요즘 한국을 비롯해 외국에도 다양한 레스토랑 추천 가이드가 있어 좋은 등급을 받는 자체로 큰 자랑이 된다. 그러나 본국에서 직접 타국까지 방문하여 식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가치 있는 기준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배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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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샘플·박은선 잇쎈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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