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순(1868∼1908), 나의 증조부는 조선 말기의 의병대장이셨고 순국선열, 애국지사 이시다.
나는 막내딸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엄마로 부터 증조할아버지의 의병활동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듣고 자랐다. 어렸을때 듣던 이 옛날 이야기를 대학을 다닐때는 증조할머니와 아버지의 가족사와 함께 이어졌고, 내가 한국 역사를 아는것 만큼 좀 더 사실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증조부의 의병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작년에 한국정부와 보훈처에서 주최한 광복절 기념행사의 일원으로 “해외거주 독립운동가 자녀 초청행사”에 초청받아 아들 캐빈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면서 부터였다.
나는 증조부가 의병활동을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한 기록들을 인터넷과 보훈처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2주간의 행사기간 동안 나와 내 아들 캐빈이 느낀 한국정부의 진정한 감사와 한국의 무궁한 발전이 “ 아! 이렇듯 아름다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의 증조부께서 그 젊은 나이에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대항해서 싸우셨구나”, 그런 분이 나의 증조부임에 또한 자랑스런 순국선열의 자손임에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증조부의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성채(成彩), 호는 의암(毅庵). 전라남도 장성 출신. 아버지는 김영철(金英澈). 의병 활동 당시에는 성채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보훈처 기록에 있는 증조부의 생애 및 활동사항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국운이 날로 기울어 가자 1906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김준(金準)•전기홍(全基泓) 등과 밀회를 거듭하면서 거의(擧義)를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1907년 3월, 장성군 삼서면 일대에서 동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정미칠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군대마저 해산되자 호남 지방에서 고광순(高光洵)•기삼연(奇參衍) 의진이 크게 활약하였으나, 이들 의병장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전에 적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그렇지만 전라도 지방에서는 김준•오성술(吳聖述)•전기홍 등에 의해 의병 활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무렵 영광•장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수십 명을 살상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그 뒤 김준과 전기홍의 의진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의병 활동의 효과적인 전개 방향을 모색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기우만(奇宇萬)이 순국하고 4월 김준마저 전사하자, 호남 의진은 대체로 조경환(曺京煥)과 전기홍의 의진으로 갈리면서 독자적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 때 정원집(鄭元執)이 의병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전기홍 의진에 합진하고 김찬순을 의병 대장으로 추대하자, 7월 8일 부하 100여 명을 거느리고 연합 의진에 합세, 의진의 도통장(都統將)이 되었다.
이대국(李大局) 의진의 총독장(總督將) 채경윤(蔡景允)을 연합 의진의 간부로 추천하는 한편, 이대국과 김유성(金惟成) 의진 등과 연합 내지 합진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8월 12일 오후 영광읍 성내리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삼서면 대곡리에 은신하던중, 8월 30일경 삼서면 금강천변에서 일본군 20여 명에 포위당하여 교전 중 붙잡혀 사살되었다고 전한다.
한국 정부는 나의 증조부께 1980년에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엄마는 수년간 전라도 장성을 비롯 지역 유지분들의 증언에 따라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며 증조부의 묘를 찾기위해 애쓰셨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하지 못하고 미국에 오셨다. 나는 작년에 행사를 마치고 증조부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장성을 찾았다. 한국에서 돌아와 증조부의 위패봉안을 현충원에 신청하였고 보훈처의 도움으로 작년 12월에 증조부의 위패봉안식을 갖게 되었다. 올해 10월에 나는 한국을 다시 방문해서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였고 증조부께서 이곳에 계심에 얼마나 가슴벅차 했는가.
나는 지금 나의 증조할머니 홍정 백씨에 대한 자료를 찾고 수집하고 있다. 엄마에 의하면 나의 증조모는 증조부의 활동자금을 담당하셨다 한다. 증조부가 사살되신 해에 증조모는 일본군에 끌려가 증조부의 거처를 추궁하는 고문을 심하게 당해서 이 세상을 떠나시는 그날까지 고문의 휴유증으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가지고 사셨다 한다.
얼마전에 종영된 “미스터 션샤인”의 스토리가 우리 증조부가 하셨다는 의병 활동과 너무도 흡사해서 난 이 드라마를 얼마나 열심히 보았는지 모른다. 이것이 각색된 드라마로 생각이 들지않았고 내 증조부의 하루하루의 힘든 싸움으로 여겨져서 너무도 가슴 아팠고 참으로 많이 울었다.
이 드라마에서 모리 타카시의 “임진년에 의병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죠. 을미년의 의병의 자식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라는 말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2009년에 개관한 스미소니언 한국관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지역 초등학교와 한국학교의 학생과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비영리 재단을 운영하였고 현재 2.20클럽을 통해 회원들과 함께 페어팩스 초등학교에 주말음식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그룹에서 봉사활동하고 있으며, 두곳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을 홍보하고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들 캐빈은 내가 하는 모든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 주고 있으며 앞으로 캐빈의 자녀들 역시 그러하리라.
나와 아들 캐빈은 증조부가 지킨 조국 대한민국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며 한국 정부가 지정한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순국선열 애국지사 나의 증조부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조선환여승람』(이병연, 보문사, 1937)
■제공처 정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저자/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로고 http://www.aks.ac.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김찬순 [金燦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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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2.20모임 회장,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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