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 방송을 보던 중 농촌 어느 마을의 공동식사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지역 인구가 줄고 평균연령이 높아진 것은 농어촌의 공통된 현실. 집집마다 일손이 부족하니 씨 뿌리고 경작하며 농작물 추수하고 출하하는 작업들을 마을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 같았다.
주민들은 그렇게 상부상조하며 농사를 짓고 점심때면 마을회관에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공동 점심식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는 데 마을주민이면 누구나 환영이라고 동네 이장은 말했다. 농사에 힘을 보태지 못하는 노인들도 식사 때는 함께 모인다는 말이다. 이장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았다.
“(노인들이) 집에서는 웃을 일도 없지요. 여기서는 둘러앉아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며 함께 식사를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웃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혼자 있을 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만나서 반가우니 웃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재미있어서 웃고,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음식을 먹다보면 기분이 좋아서 웃고 … 삶이란 본질적으로 그런 게 아닐까.
삶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부차적인 것들을 걷어내면 에센스는 결국 함께 먹고 웃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건강한 삶의 기본일 텐데 현실은 그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혼밥’이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밥이란 으레 같이 먹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인데 혼자 밥 먹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1인가구의 증가이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가장 큰 요인은 혼자 사는 젊은 인구와 노인 인구의 증가. 젊은이들은 결혼을 늦추거나 안하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들은 배우자 사별 후에도 오래도록 혼자 산다.
젊은이들의 ‘혼밥’은 많은 경우 그들의 선택이다. ‘나 홀로’의 자유를 만끽하느라, 고독을 즐기느라 종종 밥도 혼자 먹는다.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혼자 먹는 밥, 주로 노년층의 ‘혼밥’이다.
노년에 혼자 살면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일도, 마주 보며 웃을 일도 드물어진다. 은퇴하면서 사회적 관계들은 하나둘 끊기고 타 지역에 사는 자녀들과도 소원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말 그대로 혈혈단신이 된다. 그런 ‘혼밥’은 서글프다. 그런 인구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성균관대 의대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한명은 ‘혼밥’ 인구이다. ‘지난 1년 간 얼마나 자주 가족과 함께 식사 했는가’ 라는 질문에 4,959명 조사대상 중 1,202명은 ‘혼자’라고 답했다. 하루 세끼를 가족과 같이 식사하는 노인은 45% 정도. 가족과 같이 식사하는 노인일수록 우울증 위험이 낮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혼밥’은 노인 우울증 위험을 최대 30%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밥’은 단순히 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적용해보면 밥은 가장 원초적 단계인 생리적 욕구 충족에서 멈추지 않는다. 허기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밥은 3차 욕구인 애정·소속 욕구의 매개체가 된다.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중요한 친교의 수단이다.
같은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함께 나누면 친밀감이 깊어지고 연대감이 강화된다. 그렇게 친해지다 보면 서로 신뢰가 생기고 협력하게 됨으로써 4차 욕구인 존경 욕구까지 실현가능해진다. 함께 음식을 먹는 지극히 단순한 행동의 엄청난 힘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함께 먹는 밥’만한 것이 없다.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연말연시 할러데이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그달 그달 페이먼트 하느라, 불쑥불쑥 등장하는 문제들 해결하느라, 때로는 좋은 일에 기뻐하고 때로는 나쁜 일에 낙심하느라 … 허둥대며 살다보니 어느새 연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를 손에 넣기 위해, 결국은 삶의 부차적 조건들을 늘리기 위해 달려온 삶이다. 그러니 이제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웃고 가진 것들을 나누며 한해를 마무리하라는 것이 할러데이 시즌의 의미이다.
신약성경을 보면 여러번 반복해서 나오는 장면이 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 ”(마가복음 14:22) 라는 구절이다. 음식은 혼자 먹는 게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떼어서 함께 나눠 먹는 것이 전통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혼자 사는 사람들, 그래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생명체로서 우리가 갖춰야 할 에센스는 따뜻함. 모든 시린 것들을 품어 안는 따뜻함이다. 올 연말 한 가지는 실천했으면 한다. 되도록 자주 함께 먹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혼밥’의 써늘함을 덜어주는 것이다. 함께 모여 먹고 웃고 나눌수록 연말은 훈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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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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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늘 칼럼에 많이 공감합니다. 우린 자녀들이 멀리 사는 부부를 초청해서 식당에서 감사절 점심을 먹었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멀리 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권정희 주필님, 칼럼 감사합니다.
좋은글이내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