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크·새틴 등 부드러운 소재와 분홍 등 밝은 색상으로 재해석
▶ 어두운 색^무채색 계열에, 레오퍼드로 포인트 주면 산뜻
레오퍼드는 더 이상 과한 아이템이 아니다. <지컷 제공>
레오퍼드 무늬 블라우스에 하이웨스트 바지를 매치하면 레트로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에잇세컨즈 제공>
레오퍼드 무늬 롱스커트는 이전엔 소화하기 힘든 패션으로 여겨졌지만 실크나 쉬폰 등 부드러운 소재와 접목되며 보다 편안한 패션으로 다가오고 있다. <질스튜어트 제공>
서울 거주 직장인 김하나(가명·36)씨는 직장에서도 알아주는 레오퍼드 무늬(일명 호피 무늬) 마니아다. 원피스, 블라우스, 스커트에 가방, 구두, 스카프, 귀걸이, 우산, 네일아트까지. 의상과 액세서리 중 어느 하나는 레오퍼드 무늬로 장식된 걸 갖춰야 자신감이 솟는다. 매일 레오퍼드 무늬를 활용하니 직장 동료들이 레오퍼드 무늬 물건만 보면 김씨의 것인지 바로 알 정도다.
김씨는 올해 더 신바람이 난다. 레오퍼드 무늬의 인기가 여느 때보다 뜨거워지면서다. 길거리에 즐비한 레오퍼드 패션을 보며 김씨도 더 과감해졌다. 31일 핼러윈데이에는 친구와 함께 레오퍼드 패션을 맞춰 입고 서울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올해는 레오퍼드 무늬가 예년보다 주류 패션으로 부상한 것 같아요. 따로 찾지 않아도 매장마다 다양한 제품이 쏟아지더군요. ‘나를 위한 가을이구나’하면서 신나게 레오퍼드 패션을 즐기고 있습니다.”
레오퍼드의 계절이 왔다. 올해는 존재감이 남다르다. 재킷, 블라우스 같은 상의뿐 아니라 바지, 스커트, 가방, 모자, 속옷까지 모든 영역이 레오퍼드의 향연이다.
올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국내 트렌드세터 중심으로 레오퍼드 열기가 일찌감치 뜨거워졌다. 국내 매장이 없는 호주 브랜드 리얼리제이션 파의 레오퍼드 무늬 실크 스커트를 SNS를 통해 해외직구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었다. 황혜연 롯데홈쇼핑 패션 MD는 “국내 소비자가 SNS를 타고 해당 스커트와 관련 상품들을 접한 것이 레오퍼드 무늬를 한층 친숙하게 접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기중심적 사고, 레오퍼드로 구현 레오퍼드 무늬는 수세기 동안 권력, 자신감의 상징으로 읽혀 왔다. 표범이 가진 강하고 당당한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여신 세샤트도 항상 표범 가죽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19세기 레오퍼드 무늬는 부와 사치를 상징했고, 20세기엔 대중적 의류로 대량 생산되면서 고혹미를 드러내는 패션으로 거듭났다. 때로 레오퍼드 무늬는 몇몇 영화와 음악을 통해 반항적이고 위험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1970~80년대 화려한 펑크 패션(반항적, 공격적인 패션)으로 록과 유행을 함께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됐지만, 레오퍼드 무늬는 대체로 야생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로 일상에서 소화하기 힘든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뚜렷한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개인의 취향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부터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는 “하이패션이 이전엔 몸에 딱 맞거나 관능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등 남성적 시선에 기반한 디자인이 많았다”며 “그 시대가 끝나고 자기중심적 시각이 반영된 패션이 트렌드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복고 열풍이 일면서 지난해 통 넓은 바지, 화려한 색상, 오버사이즈 재킷 등으로 표현된 레트로 디자인이 올가을 레오퍼드 무늬로 옮겨왔다. 삼성물산패션의 이민국 마케팅 담당자는 “복고 인기의 연장선상에서 레오퍼드뿐 아니라 지브라 등 다른 동물무늬와 화려한 카무플라주(국방무늬)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레오퍼드 무늬를 ‘미투(#MeToo)’의 산물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2018년 FW 런웨이에서도 여성 권력 신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진취적이고 자존감 높은 여성상이 강조되면서 패션에도 자연히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관능적인 무늬, 일상적 패션으로 대중에 가까워진 레오퍼드 무늬는 이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원초적이고 드센 패션이었던 레오퍼드 무늬가 일상적 아이템으로 읽히면서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에서도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소재와 색상이 접목되면서 디자인도 다채로워졌다. 여성복 브랜드 앳코너의 김은정 디자인실장은 “과거엔 레오퍼드 무늬가 관능미를 강조하는 데 국한됐다면 올가을에는 자연스러운 캐주얼 종류나 여성 정장 스타일, 개성이 돋보이는 스트리트 패션까지 활용 범위가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소재는 딱딱한 가죽이나 두꺼운 털에서 실크와 시폰, 새틴 등 부드러운 것으로 옮겨갔다. 코튼, 울, 캐시미어 소재로 캐주얼한 느낌을 강조하기도 한다. 색상도 다양해졌다. 블랙, 브라운 등 기본 색상에서 나아가 분홍색, 녹색, 파란색 등 밝은 색상으로도 재해석되고 있다.
이민국 마케팅 담당자는 “6~7년 전 레오퍼드 무늬가 크게 유행했을 때는 털 소재에 레오퍼드 무늬를 섞어서 화려한 이미지를 강조했다”며 “친환경 소비가 대두되는 요즘엔 동물의 털, 모피 소재보다는 스커트, 블라우스 등에 레오퍼드 무늬를 접목하는 추세”라고 했다. 황혜연 롯데홈쇼핑 패션 MD는 “여성복에서는 스커트가 강세를 보이는데, 리얼리제이션 파의 영향으로 이와 유사한 실크 소재의 롱스커트가 많이 등장했다”고 밝혔다.
레오퍼드 무늬, ‘부담 패션’ 안 되려면 담백해졌다지만, 레오퍼드는 여전히 화려하다. 잘못 코디하면 ‘부담 패션’으로 비칠 수 있다. 레오퍼드를 좀 더 산뜻하고 세련되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인 연출법은 어두운 색, 무채색 계열에 한 가지 제품만 레오퍼드 무늬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갈색 등 기본 색상의 제품은 검은색 상하의와 연출하면 단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성복 보브의 박상은 마케팅 담당자는 “검은색, 회색 등 어두운 색상의 재킷에 레오퍼드 무늬 셔츠를 매치하거나 레오퍼드 원피스에 짙은 색 티셔츠 등을 겹쳐 입는 식으로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유행하는 복고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면 접근이 더 쉬워진다. 상의를 레오퍼드 무늬로 입었다면 하이웨스트 바지나 스커트를 맞춘다. 오버사이즈 재킷 안에 레오퍼드 무늬 상의를 입으면 별다른 액세서리를 하지 않아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오퍼드 무늬에 원색의 채도 높은 색상의 옷을 배치하면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화려한 본연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연출할 방법으로 ‘톤온톤(tone on tone)’ 방법을 추천했다. 상하의를 동일한 색상과 무늬로 연출하되 톤이 다른 배치로 조화로운 모습을 살린다. 화려한 레오퍼드 무늬 재킷과 코트에 유사한 색상의 니트를 입어 통일감을 준다.
레오퍼드에 익숙해졌다면 한 단계 더 나가본다. 패턴에 패턴을 조합하는 식으로 트렌드한 감성을 자아낸다. 최근 런웨이에서는 지브러 무늬에 레오퍼드 무늬까지 곁들이는 시도도 등장했다. 삼성물산패션의 이민국 마케팅 담당자는 “배치하는 컬러가 세 가지를 넘으면 안 된다는 건 옛말”이라며 “차분한 체크 무늬의 상의에 화려한 레오퍼드 무늬 하의를 배치하면 틀을 깨면서도 정돈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오퍼드 특유의 무거운 느낌이 부담스럽다면 캐주얼하게 입어도 좋다. 김은정 디자인실장은 “치마에 포인트를 줬다면 상의는 후드 티셔츠나 맨투맨 등의 캐주얼한 옷을 입는다”며 “레오퍼드 무늬 옷에 운동화나 워커 등을 신으면 편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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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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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