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커튼 틈새로 들어와 잠을 깨웠다. 커튼을 젖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사한 빛이 밀고 들어왔다. 바리톤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며 좀 더 누워있었다. 가을을 타는 내가 날씨가 서늘해지면 한때 아침 의례처럼 듣던 노래였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나를 깨운 가을 햇살,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숲으로 가자.
거기까지였어야 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되려면. 현관문을 여는데 발밑의 느낌이 뭔가 수상쩍었다. 깨알만 한 개미 대여섯 마리가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어디서 나왔는지 살펴보니 조그만 구멍이 눈에 띄었다. 테이프를 가져다 개미를 붙여서 버리고, 다닐만한 통로를 막았다.
여기는 우리 집이야. 너희는 집밖에서 살 데를 찾아야지 왜 여기를 침입해. 개미들은 멋모르고 나왔다가 영역 침범이라는 죄목으로 죽어야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숲으로 차를 몰았다. 은사시나무의 노란 잎들이 살랑거리며 소슬바람 소리를 냈다. 아침 바람은 청량했고 노란 잎과 파란 하늘의 대비가 눈부신 가을이었다. 숲길로 들어서는 길바닥에 흙무덤 미니어처를 닮은 것들이 즐비했다. 개미가 땅속에 동굴을 파면서 퍼낸 밤톨만한 흙무더기들이었다. 저 아래 얼마나 많은 개미가 모여 살고 있을까.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광경이었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개미 이야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생각이 났다. 인간에게 개미는 귀찮고 하찮은 존재이지만, 개미 세계에서는 인간이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군림했다. 일단 인간 몸집이 개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개미 입장에서는, 거구의 체격을 한꺼번에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신격화했을지 모른다. 엄지손가락 하나면 개미 세상을 통째로 초토화시키는 괴력을 지닌 신이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막연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는 건 개미나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장난감 같은 저 숱한 흙무더기 아래에 개미 사회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무의식 중에 밟아서 무너지기라도 하면, 담당 개미가 지진 경보 페로몬을 발사하지 않을까. 인간이 조깅할 때마다 울리는 굉음에 놀라, 신이 분노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개미는 없을까.
소문만 듣고 우왕좌왕하는 개미들 모습에 인간 모습이 겹쳐왔다. 판단력 부족이나 무지가 부른 비극은 어느 세계에도 있는 일이다. 산책하던 개가 홍수를 낼 수도 있을 텐데, 개미 사회에서는 홍수와 냄새를 어떻게 분석할지. 길섶의 키 작은 들꽃도 흩날리는 단풍도 오늘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나가나 개미만 보였고 개미 생각만 하게 되었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운전을 하며 음악을 틀었고 오늘 본 것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단풍과 은사시나무와 들국화를, 하늘을 빙빙 돌던 매와 나무를 타던 다람쥐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발끝에 짓밟히던 개미집과 돌멩이 밑에 떼로 몰려 오글거리던 개미 기억만 났다. 남편과 나는 같은 공간에서 그렇게 다른 세계를 보고 온 거였다. 집을 나설 때 개미를 죽이고도, 그랬다는 사실조차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운전하던 남편이 갑자기 앗, 하더니 격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 바람에 순간적으로 핸들이 방향을 잃으면서 차가 기우뚱거렸다. 남편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은 허벅지를 누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았다. 모든 게 일시에 멈추어버린 느낌에 나는 아무런 조처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다리를 누르면서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는 걸 보니 쥐가 난 건 아닌가 보았다. 그는 바짓가랑이 속에서 까만 개미 한 마리를 끄집어냈다. 개미가 바지 속으로 들어가 그의 허벅지를 문 거였다. 아마 숲에서 묻어온 모양이었다. 1cm짜리 개미가 괴물처럼 커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차에 올랐지만 나는 엉뚱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개미를 죽이고 개미에게 물린 일이 정말 우연일까. 나는 인과관계를 떠올리며, 살생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저 위의 누군가를 의식하는지도 몰랐다. 경외롭고 장엄해서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러면서도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존재를.
개미의 신이라는 인간이 아침에 개미 몇 마리 죽인 게 원인이 될 수야 없겠지만, 개미 한 마리 때문에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감히 신의 다리를 물다니. 개미와 함께한 아찔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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