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 눈에 확 띄는 조그만 사진 한 장이 있었다. 1924년생이니까 94세인 39대 지미카터 미국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집짓기 봉사를 하는 사진이 그것이다. 그 사진은 수많은 함의(含意)를 보여주고 있다. 고령임에도 ‘땅콩농부‘의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지속하고 있고, 정치인들에게 흔한 ‘정치 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시선을 잡았다. 변화 많은 세상에서 그 나름의 내공을 지속한다는 것은 ‘제스추어나 쇼’일 거라는 입주름의 위험도 따르지만 진정성이 바탕을 이루면 격조가 한층 달라지는 것이다.
나라에는 국격이 있고,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 한국근대사에서 ‘인격자’로 회자되는 분 중에 빠질 수 없는 분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였지만 뒤늦게 합류한 이승만에게 단합과 단결을 위해 실권을 양보한다. 상해 임시정부수립에서도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였지만 소위 ‘생색나는 자리’는 끝내 고사한다. 하도 자리싸움을 하는 걸 보고 스스로 국무총리에서 노동국 총판자리로 물러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뛰어 넘고 흉내조차 힘들었던 시기였다. 지나놓고 보니 대인격자(大人格子)였다.
자산 가치만 수백억이 넘는다는 서울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그 교회가 만든 원칙을 자의적으로 변경해서 아들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해 준 일로 세상이 떠들썩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 지려고 한다. 그런 반면에 은퇴 후에도 선교로 헌신하는 원로목사님들과 척박한 개척교회를 새로 시작하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낱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는 성격적 삶을 몸소 마지막까지 실천하는 일로 생각한다.
그런 반면에 교육감을 하고 은퇴한 분이 초등학교 교사를 자청했다는 분은 제도적인 문제 이전에 들어 본 일이 거의 없다. 징벌적 의미로 쓰이는 ’백의종군’이라는 말이 있다. 삭탈관직하고 장수제복인 철릭 없이 속에 입던 흰옷만 입고 근무하게 했던 데에서 비롯된 말을 정치인들이 너무나 흔하게 갖다 붙여서 무슨 성(?)스러운 낱말로 둔갑시켜버린 말이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계급과 지위가 그렇게 중요할까만 진정으로 나라와 국방제도 개선을 위하는 일이라면 단기라도 사병근무를 자청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럼에도 장성이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야기는 건군 이래 들어 본 일이 없다. 제대한 지 수십 년 후까지도 계급장을 떼놓지 않으려는 모습이 어찌 보면 안쓰럽기까지도 하다. 아주 조그만 한인단체만 맡아도 회장 때만 열심히한 뒤 ‘내 고생 대신 해봐라’ 후임에게서 전관예우(?) 받으려는 일 아주 비일비재하다.
경제는 나라의 피요 살이라고 한다면 양심과 도덕은 근육이오. 나라의 뼈대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양승태 대법원시절의 사법부는 굴절과 훼절로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
사법부 역사에서 보자면 꿈속에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황당무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법농단을 밝혀내기 위하여 2018. 8월말 현재까지 수사를 하겠다고 검찰이 제출한 사법부에 대한 영장이 단 11.1%인 23건만(총 208건청구) 발부되었다. 그것도 사법농단의 진원인 법원행정처에 대한 영장은 단 한건도 영장이 발부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심판할 뿐 심판받지 않겠다’라는 듯 교만과 전횡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양승태로부터 임명을 받은 3명의 영장 전담판사에 의해서 대한민국 3천여 명의 각급 판사를 포함 사법부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데도 세상은 너무나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박보영이라는 여성판사가 있다. 2012.1월 양승태의 추천에 의해서 대법관에 임명되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2018.1. 1 대법관에서 퇴임하였다. 대법관 재임시절에도 그 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가사분쟁과 여성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자로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사실 그런 일들도 퇴임후의 그녀의 색다른 진로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대법관은 사법계에서는 가장 영예로운 자리이다. 그 임명도 쉽지 않다. 기관의 수장이 아닌데도 국회청문절차까지 거쳐야 임명되는 자리이다. 그만한 지위가 아니고 일선 검사로만 퇴직을 해도 ‘전관예우’를 기웃하는 게 당연한 사회이다. 경험을 사장시키지 않고 살려서 사회를 보다 안정되게 이끌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질서와 공정성을 헤치는 대표적인 게 ‘전관예우’의 폐해이다.
대법원은 본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박전 대법관을 원로판사로 임명하고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지법 1심 소액전담판사로 전보하였다. 대법관급 최고위인사가 대학, 로펌, 변호사를 선택하지 않고 시군법원 판사로 법복을 입은 첫 사례라고 한다. 물론 양승태 시절 전원합의체 심판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업보가 지워질 수는 없는 것이지만 떨어질 대로 추락한 사법부에 조그만 빛줄기를 보는 것 같다.
경영학 연구에는 ‘시켜서 하는 일‘ ’해야 할 일‘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 들이 있다. ‘A willing burden is no burden’ 이런 일일수록 말없는 극혐(極嫌)의 비아냥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주 조그만 ‘변화의 방법’이 ‘수많은 핑계’들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국격도 바뀐다. 한국도 그런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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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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