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27세이던 1796년부터 서서히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 1802년, 그는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로 요양을 떠났지만 영원히 청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동생들 앞으로 장문의 유서를 남긴다. 이 유서에는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력 상실을 인정하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베토벤의 절망과 분노가 담겨있다.
하지만 베토벤은 유서를 동생에게 부치지 않았다. 사후에 그의 침대 옆 책상 서랍에서 이 유서와 그가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가 1994년에 개봉된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이 남긴 유서를 보고 가까운 친구이자 제자였던 쉰들러(Anton Schindler)의 시점에서 의문의 여인이 누구인지 풀어나가는 영화이다. 다양한 여인들이 후보에 오르고 베토벤의 첫째 동생의 부인이 그의 ‘불멸의 연인’인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데, 이는 허구로 그려진 것이다.
음악가가 청력을 잃는다는 것은 화가가 시력을 잃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유서의 내용과 상반되게 그가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며 작곡한 곡들은 놀랍게도 낙천적이다. 특히 1802년에 쓰여진 교향곡 제2번은 밝고 풍성한 화성들로 가득하여 희망과 따뜻함마저 느껴진다.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후원, 악보 출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등 당시 베토벤의 상황은 긍정적이었다. 또한 그는 청력 악화에 대한 불안을 잊기 위해 곡을 쓰는데 집중하였고,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제2번 교향곡이다.
Symphony No. 2 in D major, Op. 36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이후의 시기를 베토벤의 중기로 구분한다. 중기에서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2번 교향곡에서 그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또 다른 발전을 꾀했다. 제1번 교향곡에 비해 대담한 화성이 사용되었고, 곡의 길이는 물론 악상의 범위도 넓어졌다. 1악장 서주부터 매우 장대해졌고 3악장에 고전적인 미뉴에트(Minuet) 대신 스케르초(Scherzo)를 사용하였다. 문자 그대로 ‘농담’이라는 뜻을 가진 스케르초처럼 쉼표의 활용, 악상의 급작스런 변화, 조성의 변화 등을 사용해 유희적 효과를 냈다. 제2번 교향곡을 감상하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빠른 리듬의 전개, 악상의 변화와 함께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마무리되는 4악장 후반부에는 감동이 벅차 오른다. 청력을 잃어가던 베토벤이었지만 그는 1803년 직접 제2번 교향곡의 초연 무대에 지휘자로 섰다.
제2번 교향곡을 포함하여 그 전후에 작곡된 작품들은 어둡고 격정적인 분위기보다는 밝은 느낌의 장조 작품들이 많다. 베토벤이 머물렀던 하일리겐슈타트에는 제6번 교향곡인 <전원 교향곡>을 구상했던 산책로와 집이 지금도 남아있다. 현재 기념관으로 꾸며진 집 내부에는 베토벤의 초상화, 그의 친필 악보, 유서의 원본 등 그를 추모하는 많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제로 베토벤은 규칙적으로 산책을 즐겼고 자연을 사랑했다. 베토벤이 집 뒤의 산책로에서 생각해 낸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그가 듣고 싶어하고 음악에 담아내고 싶어 했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서정적인 교향곡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1808년에 작곡되었다. 숲 속의 새소리나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는 우리에게 아주 평범하다. 베토벤은 이런 자연의 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전원 교향곡>은 그가 자연에서 느낀 감정을 음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또한 그는 각 악장마다 간단한 설명을 첨부해 어떠한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지 들려준다. 이를 표제음악이라고 부른다. 악장 별로 표제에 맞춰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감상해보자.
제6번 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의 4악장 형식에서 벗어난 5악장 구성이다. 1악장의 제목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신나게 뛰어가는 장면이 상상된다. 시냇가의 잔잔한 물결의 모습을 담은 2악장의 제목은 <시냇가의 풍경>이다.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의 제목을 가진 3악장에서는 사람들이 즐겁게 수다를 떠는 듯한 흥겨운 움직임이 나타난다. 하지만 폭풍을 예고하는 천둥 소리가 들려오고 곧바로 4악장으로 이어진다. 4악장 <폭풍>에서는 더블베이스의 저음이 무서운 바람 소리를 나타내고 팀파니는 천둥 소리를 묘사한다. 악상의 대조로 인해 더 격정적인 느낌이 든다. 5악장 <폭풍이 지나간 뒤의 행복과 감사한 마음>에서는 8분의 6박자로 흐르는 밝은 멜로디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상황에서도 최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던 베토벤. 그가 받았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베토벤의 일생을 알고 그의 음악을 듣는다면 더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걱정이 많아 잠이 오지 않을 때,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그의 작품을 들으며 인간 베토벤에게 잠시나마 기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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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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