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뉴욕에서 잠시 집에 다니러온 딸 덕분에 “몸만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이던 내가 미국의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요즘 딸과 함께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은 지난 2월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퀴어 아이(Queer Eye)’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로그램 등장인물들은 전부 동성연애자들이다. ‘fab 5’(멋진 이란 뜻의 fabulous 약자)라 불리는 5명의 등장인물들(각각 의상, 헤어, 인테리어, 요리, 라이프 코칭 담당)이 팀을 이루어 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카우치 포테이토(한국말로는 ‘죽돌이’쯤 되겠다)’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환골탈태시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들이 찾아가는 곳이 조지아를 비롯한 남부의 바이블벨트 지역으로 동성연애에 대한 반감이 아주 높은 곳인데, 이것이 바로 프로그램의 키포인트다. 즉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도 사람이며, 선한 이웃임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이들은 낮은 자존감과 대인관계의 상처 때문에 이웃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도 왕따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안다”며 살갑게 다가간다.
이 프로그램을 여러모로 흥미 있게 보고 있는 가운데 마침 직장에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동호회를 승인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 국제 로타리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여성회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보수적인 단체였다. 창립지인 시카고에 세계본부를 두고 전 세계 3만5,000여개 클럽을 관장하는 국제 로타리는 1980년대 3명의 여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인 캘리포니아의 한 클럽을 퇴출시켰다. 그러자 그 클럽은 국제 로타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엎치락뒤치락 끝에 1987년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 승소판결을 이끌어냈다.
당시 로타리란 단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더구나 미래의 직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신문기사를 통해 이같은 판결을 접하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20세기 대명천지에, 그것도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벌어지다니…” 라며 끌끌 혀를 찼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어찌됐든 내가 근 20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이 단체의 미국인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두고 가정의 가치를 신봉하며,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빈부의 격차와 같은 사회적 이슈는 정부의 간섭보다 지역사회 내에서의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는 온정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랬던 단체가 몇 년 전부터 ‘배우자(spouse)’라는 단어 대신 ‘파트너(partner)’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LGBT 동호회까지 승인했다는 사실은 세상이 얼마나 숨 가쁘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개인이나 단체, 기업들이 얼마나 열심히 스스로를 진화시켜 나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쩌다 보니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들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자녀들은 모든 ‘차별’은 물론 ‘구분’조차 금기시하는(적어도 이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나를 포함한 대다수 1세대들의 인식은 이를 포용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흔히 미국에서 언어장벽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들은 언어소통에 지장이 없는 자녀들에게 “저희들은 말도 통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들은 더 넓은 바깥 세상에서 오히려 부모보다 훨씬 더한 정체성과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말도 안 통하고 잔소리나 해대는 ‘꼰대’가 아닌 ‘멘토’로서의 부모가 필요한데, 이민자로서의 한계를 안고 먹고 살기에 급급한 부모들로서는 자녀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이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녀들보다 미국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알지는 못해도 대화를 끌어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녀와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자녀들이 우리보다는 훨씬 가치관이 개방된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경기를 일으킬 만큼 싫어하는 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녀들 앞에서 우리와 그들(인종, 소득, 성적 취향 등 구분의 잣대가 무엇이든 간에)을 구분하고 타자화하려는 태도만 삼가도 자녀들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부모 노릇에도 끊임없는 배움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내 생각, 내 믿음만 고집하다가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지탄받는 태극기 부대 노인들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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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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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일들..가치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