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나 윌리엄스 인스타그램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얼마 전 복귀한 테니스 선수 서리나 윌리엄스는 출산 후 16개월 만에 출전한 프랑스 오픈 경기에 매우 인상적인 모습의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블랙 컬러에 허리에는 레드 밴드가 둘러 있는 딱 달라 붙는 전신 보디수트로, 영화 ‘블랙 팬서’에서 아프리카에 있는 가공의 나라로 등장했던 나라의 이름을 따 와칸다 스타일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운동 선수가 입는 옷은 기능적이고 편안해야 한다. 오랜 훈련을 통해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신체의 잠재력을 끌어 올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일류 선수들이 협업으로 연구를 거듭해 운동복을 발전시켜 왔다.
윌리엄스가 전신 보디수트를 입고 주요 경기에 나선 최초의 선수는 아니다. 1985년 윔블던 대회에서 미국의 앤느 화이트 선수는 화이트 컬러의 전신 보디수트를 입고 경기에 나섰는데 주최측으로부터 조금 더 “전통적인” 옷을 입으라는 권고를 받고 다음 날부터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특정 스포츠 특유의 전통과 고집이 개입해 있는 경우 유니폼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기능성과 활동성 외에 다른 제한들이 붙게 되는 것이다. 유난히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테니스계가 특히 그렇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1900년대 초에 여성들은 긴 팔 상의에 긴 치마를 입고 코르셋까지 착용하고 테니스를 쳤다. 1920년대에 민소매 톱이 등장했고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치마가 짧아졌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테니스 스커트는 이때쯤 나와 대중 사이에도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테니스 업계의 여성 유니폼은 오랜 기간에 걸쳐 몇몇의 새로운 시도와 반발 속에서 경기를 하는 데 보다 적합한 옷으로 바뀌어 왔다. 1900년대 초에는 코르셋까지 착용한 긴 치마를 입긴 했어도 운동을 하는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한때의 개혁은 변화된 자리에서 더 나아갈 동력이 될 뿐이고, 다시 깨뜨려야 할 과거의 속박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뭘 어떻게 하든 스커트나 드레스가 프로 테니스 경기처럼 격렬한 운동에 적합할 리가 없다. 물론 기존의 드레스와 스커트 유니폼으로 더 좋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선택의 여지는 각자가 편한 대로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운동복의 경우 그 목적은 더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런 역사는 1932년 윔블던에 출전한 영국의 헨리 오스틴 선수가 긴 플란넬 바지를 거부하고 반바지를 입은 변화 이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남성 테니스 유니폼의 역사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이런 과거의 고수 때문에 몇 년 전에는 수선을 해야만 경기가 가능한 유니폼을 선보이는 등의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과연 전통의 고수가 지향하는 것,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그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수들이 개선과 발전을 도모해 왔고 윌리엄스도 그런 선수 중 하나다. 운동이 만들어 낸 근육을 숨기지 않고 과시했고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 왔다. 사실 와칸다 보디수트는 윌리엄스가 2002년 US 오픈 대회에 입고 나왔던 반팔에 반바지가 일체형으로 결합된 롬퍼 형태 경기복의 발전형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과거를 쌓아 미래를 만든다.
그는 이 새로운 유니폼을 입으면 자신의 능력에 보다 확신이 생기고 슈퍼 히어로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신축성 섬유가 복잡하게 연결된 이 경기복은 경기력 향상뿐만 아니라 출산 후 혈전이 폐혈관을 막는 폐색전증을 앓은 윌리엄스의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도록 제작되었다.
윌리엄스는 이 옷에 대해 출산 후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돌아온 모든 여성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다른 모든 사람들도 영감과 자기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옷이란 이렇게 역사 혹은 맥락 속에서 그 모습 자체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전달하고 또 자신의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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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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