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김호길 시인이 그의 시조 시집인 ‘사막 시편’으로 제4회 팔봉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집은 시인이 극한의 땅 바하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농부의 삶을 살아 가면서 풀어 낸 미국에서 처음 출간한 한국 시조시집이다. 특히 영어로 번역한 ‘Desert Poems’ 으로 출간되어 미국에 한국 시조를 알리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시집이다.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문학교수이며 형이상학 시인인 폴 멀돈(Paul Mouldon)이 지적한 대로 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정체성, 아니 인간 삶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은유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서로 연관되고 통용되는 면이겠지만 두가지의 측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측면은 자연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관계를 중요시 하는 관계의 삶이고, 둘의 측면은 관계의 삶 밑 바닥을 지탱하고 있으면서 죽음과 맞서야 하는 생존의 삶이다.
그래서 버지니아 대학(UVA)의 문학교수인 그레고리 오르 (Gregory Orr)는 ‘시는 생존이다’ (Poetry as Survival, 2002)라는 제목의 시 평론집을 출간하면서, 시란 인간의 생존을 지켜 주는 문학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레고리 오르 시인은 어릴적에 사냥을 갔다가 오발사고로 동생의 죽음을 맞이하였고, 아버지의 약물중독을 겪었으며, 시민운동에 참여하여 감금과 고문을 경험하는 등 극한적인 삶의 밑바닥에서 시를 통하여 삶의 생존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 관계의 삶을 주제로 하는 시를 관계의 시라 하고, 인간생존의 삶을 형상화하는 시를 생존의 시라고 분류할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김호길의 시조는 생존의 시에 속하는 성향이 드러나는 시조가 아닌가 여겨진다.
김호길 시조시인의 삶이 그로 하여금 생존의 시조를 읊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81년 영주권 없이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건너와 어려운 역경의 이민생활을 하다가 1988년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사막에 들어가 모래를 일구는 농부의 삶이 바로 생존의 삶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러한 생존의 삶을 형상화 한 시조를 “그 극한의 하루 하루를 이어가는 처절한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피와 땀과 눈물로 엮어 낸, 그래서 상처투성이 몸으로 풀어 낸 ‘눈먼 무소처럼 사막 벌을 딩굴러 오며’ 혼자 부른 나의 노래이다” 라고 독백하고 있는 것이리라.
‘처절한 삶’, ‘피와 땀과 눈물의 삶’, ‘상처투성이 몸의 삶’ 이라고 김호길 시조시인이 고백하는 생존의 삶을 형상화 한 모습은 무엇인지, 아니 인간이 생존의 삶을 이어 나아 갈 수 밖에 없는 모습은 무엇인지, 그의 ‘사막 시편’에서 음미해 보기로 한다. 시인은 생존의 삶에 관한 세가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첫째 생존의 모습은 무엇인가에 ‘맡기는 삶’이다.
생존의 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무엇인가에 스스로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리라. 시인은 ‘맡기는 삶의 모습’을 ‘절망에 기대는 것’, ‘달무리 달(인력권)을 껴 안고 비잉빙 돌아가는 것’, ‘그 런 순간을 가누고 서는 것’ 등으로 표출하고 있다.
기댈 곳 절망뿐일 때
절망에라도 기대야지
구름이 석양에 기대듯
서산이 노을에 기대듯
기댈 곳 지푸라기도 없을 때
너 절망 품에 기대야지
둘째 생존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캐는 삶’이다.
죽음의 상징인 모래 뿐인 사막에서 무엇인가를 캐는 사막 농부의 삶은 분명 생존의 모습임이 분명하다. 김호길 시인은 사막농부의 삶을 묵묵히 처박혀 있는 ‘바위처럼 사는 모습’이나, 세상의 어떠한 직위 보다도 ‘낮고 더 낮은 모습’이나, ‘죽으러 가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나도 뜨거운 바위 밑 고개 처박고 살겠다고
이 꼴 저 꼴 안 보고 바위처럼 살겠다고
열사의 사막에 와서 농사꾼이 되었더란다
셋째 생존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하늘을 ‘나르는 삶’이다.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고자 발 버둥치는 생존의 마지막 모습은 극한 상황을 뛰어 넘는 소망을 향하여 하늘을 나르는 삶일 것이다.
극한 상황을 뛰어 넘는 길은 세상살이의 시간들을 ‘손가락 사이 모래알 처럼’ 흘려 내려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소망인 ‘저 세상’을 향하여 비록 지옥 같은 이 세상일 지라도 거기에서 바라 보이는 하늘을 ‘나르는 삶’이 김호길 시조시인이 간절히 추구하는 생존의 모습인 것이리라.
지옥에도 하늘이 있더라
나는 이미 그곳을 날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지옥 하늘 비행사
이미 난 그 곳 천둥번개를
꿰뚫고 날아 왔나니
김호길은 ‘사막 시편’에서 (1) 절망에 맡기는 삶, (2) 무엇인가를 캐는 농부의 삶, 그리고 (3) 저 세상을 향하여 지옥 하늘을 나르는 삶 등등으로 인간생존의 삶을 형상화한 시의 철학을 개척한 시조시인이라 지칭해도 무리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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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순 <박사·시인·문학평론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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