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구찌에서 출시한 스니커즈. <구찌 인스타그램>
최근 대표적인 대형 패스트 패션 기업 중 하나인 H&M의 경영부진 뉴스가 꽤 화제가 됐다.
보도에 의하면 12월부터 2월까지의 영업이익이 60% 넘게 감소했고, 특히 팔리지 않고 쌓인 재고가 4조5,000억원어치나 된다고 한다.
사실 패스트 패션 기업들의 현 성적표는 다들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트렌드를 따라잡거나 일상복의 대안 역할을 했던 몇 개의 브랜드가 바로 몇 년 전까지 상당한 이익을 거둬들였지만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패스트 패션에서 떠나가고 있는가 하면 그렇게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 경쟁자들이 많아졌다. 한국만 봐도 기존 해외 브랜드뿐만 아니라 그간 론칭한 국내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을 백화점과 쇼핑몰, 단독 매장, 심지어 마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즉 지금의 현상은 시장을 이끌어 가던 몇몇 기업이 비대해졌다가 안정되며 구조가 조정되고 있는 형국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경쟁이 치열한 와중에 그 반대 편이라 할 몇몇 하이 패션 브랜드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많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인 LVMH와 케링은 매출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주식시장에서도 사상 최고점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성장은 중국이나 중동 등 새로운 시장의 영향이 분명히 크다. 특히 중국의 경우 지난해 명품 시장 규모는 전해에 비해 20% 정도가 커진 23조7,000억원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역시 15%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성장의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컨설팅 회사 베인 앤 컴퍼니는 작년 말 럭셔리 마켓에 대한 분석 리포트를 공개했는데(Luxury Goods Worldwide Market Study, Oct. 2017, Bain & Co.) 여기서 럭셔리 마켓이 2016년을 기점으로 변했다면서 그 이유로 젊은 소비자의 성장을 들었다. 분석에 따르면 1980년 이후 출생자들의 고급 제품 시장 매출 비중이 어느덧 30%를 넘어섰다. 특히 Z세대로 일컫는 1995년 이후 출생자들의 고급 제품 소비율 증가는 매우 가파르다.
최근까지 하이 패션은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중산층 특히 고위직 진출이 늘어난 여성을 주요 대상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나 취향, 필요에 부응하고 또 새로운 패션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그간 하이 패션 브랜드들은 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주요 소비자가 바뀌고 있다. 예전 고객들이 드레스와 수트, 코트와 가죽 가방을 구입했다면 이 새로운 고객들은 티셔츠와 운동화, 청바지와 다운 파카를 구입한다. 예전 고객들이 비슷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동질감을 형성했다면 새로운 고객들은 비슷한 가치관에 기반해 동질감을 형성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디지털 플랫폼의 속도에 익숙하고 거기서 큰 영향을 받는다.
2016년을 기점으로 이들의 소비가 고급 제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드러냈고 이에 따라 하이 패션 브랜드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경영진을 교체하며 새로 재편된 시장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최근 대형 브랜드들의 수많은 인력 이동은 그 재편이 남긴 흔적들이다.
물론 이전의 고객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제품과 옷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새로운 소비층이 유입되었는데 그들이 소비를 주도하면서 하이 패션의 성장 동력이 됐고 브랜드가 주목해야 할 주요 고객층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때 트렌드를 주도하던 몇몇 브랜드들은 이미 적응에 실패해 최전선에서 떨어져 나갔고 변화에 먼저 대처한 브랜드들은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 새로운 소비층은 아직 젊고, 예전의 시장을 이끌던 소비자들은 앞으로 줄어들 게 분명하므로 이 변화는 한동안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패스트 패션에서는 구조가 조정되고 하이 패션에는 새로운 소비 세대가 등장하는 변화는 언제나 기존 브랜드들의 명암을 갈리게 만든다. 시장의 재편성 속에서 누군가는 변화에 실패하고 과거에 남고, 누군가는 변화를 주도하며 미래를 이끌어 간다. 과연 이런 과정이 우리가 언제나 입고 보는 옷을 또 어떻게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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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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