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한국에서 이른바 ‘펜스 룰’이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남성 직장인들이 아예 말썽의 소지를 차단한다하여 여성들과의 교류 및 접촉을 피한다는 것인데, 나는 처음에 이것이 울타리를 친다는 의미의 ‘Fence Rule’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다”는 마이크 펜스(Mike Pence)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서 유래한 용어라고 한다.
글쎄 그가 정치인으로서 자기 관리에 엄격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만한 철칙인지 모르겠으나, 이것이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미투 운동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아닐 뿐더러 오히려 여성의 소외와 차별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미투 운동은 알려진 대로 지난 해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이 여성 수십명을 성적으로 괴롭혀 왔다는 폭로가 나온 이후, 배우 앨리사 밀라노가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미투(#MeToo)’를 통한 동참과 연대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미투 운동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기폭제가 된 것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였다“. 현직 검사가 그같은 일을 당할 정도면 힘없는 일반 여성들은 어땠겠는가”하는 지지 여론이 우세했지만 한편에서는 “그녀의 동기가 불순하다”는 반격과 함께 그녀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었다.
어렵사리 용기를 낸 피해자가 신상이 털리고 악플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을 폭로했던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생각났다. 20여년전 당시 신인이었던 펠트로를 영화‘ 엠마’ 에 캐스팅해 이름을 알리게 해 준 이가 바로 와인스틴이었으며, 그녀는 2년 후 그가 제작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탑스타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을 때 아무도 “그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 이제는 많이 컸다는 건가?” 등의 시비를 걸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입었던 피해 사실이었다.
얼마 전에는 또 새로운 논란이 터져 나왔다. 이른바 정치적 공작론이다. 고발당한 이들이 소위 말하는 진보 진영에만 몰려있고, 선정적인 보도들로 인해 삼성이나 MB같은 더 중요한 뉴스들이 묻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성 문제에 진영 논리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긴 하지만, 사실 왜 유독 진보진영에서만 고발당한 이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은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누구든 한번 쯤 품어 보았음직하다(과거의 전력으
로 보건대, 보수 진영이 결코 이 같은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도 말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누군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어서’라기 보다는 피해자들이 그나마 진보 진영이 자정 능력이 있고 자신들이 보호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마치 얼음을 깨려는 사람들이 두껍게 얼어붙은 쪽은 놓아두고 얕은 얼음을 먼저 깨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나는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당하기만 했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여론재판과 마녀 사냥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모두가 냉철한 분별력과 지혜를 발휘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미투 운동이 단순히 여성들과 관련된 젠더 이슈만이 아닌, 이 사회의 모든 ‘갑’과 ‘을’의 불공정한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사회변혁의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당장의 혼란과 불편함을 면하기 위해 펜스 룰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남자애가 씩씩해야지”나“ 여자애가 쿵쾅거리고 뛰어다니면 안 돼” 등과 같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어린 시절부터 성차별적인 시각을 키운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내가 한살 더 먹었으니 말 놓을게”란 말도 안했으면 좋겠다. 성추행 피해자를 보고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와 같은 말도 마냥 듣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그냥 ‘같은 사람’으로 공감하고 분노하기는 어려운 건가.
사고의 전환은 상대방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는 시선에서부터 시작한다. 성별이나 연령, 인종, 소득, 직업 등에 따라 사람을 구분 짓는 일이야 사회생활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 기본적인 바탕에는 우리 모두가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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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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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그냥 상대방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으로 대하면되지요.
남자들은 이제부터 꽃뱀에게서 살아나는 방법을 연구하지않고 여자들에게 가까이 갖다가는 의도하지않은 누명으로 매장될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합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악질적으로 미투운동이라면서 보복하고 사람 잡으러 드는 사람때문에 선량한 남자들도 조심스럽게 남녀 교제를 두려워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