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 택시업 백인들 ‘정부가 우버 비호’
▶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닌 문화 충돌
정부가 우버를 비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런던의 블랙 캡 기사들이 피켓위를 준비하고 있다. [Andrew Testa/뉴욕타임스]
■ 토착 아날로그 vs 이민 디지털 대결
자라 바카리(38)는 오전 6시 조금 전에 일어나 새벽 예배를 준비한다. 이어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주차된 흰색 도요타 프리우스의 운전석에 올라타 우버 앱을 켠 다음 그날의 첫 호출신호를 기다리는 것으로 그녀의 일과가 시작된다.
비슷한 시각, 바카리가 거주하는 런던 남동쪽 저소득주택단지 반대편에 위치한 아담한 단층집에서 폴 월시(53)는 커피와 버터를 바른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한다. 마치 법으로 정해진 절차이기라도 한 듯 신문의 스포츠면을 대충 훑어가며 식사를 마친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한 다음 영국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블랙 캡’(black cab)의 엔진을 점화한다. 그의 선행지는 늘 히드로 공항이다.
바카리와 월시는 매일 똑같은 거리를 누비고 다니지만 서로 일면식조차 없는 사이다. 그러나 바카리가 소속된 우버와 월시가 속한 블랙 택시는 앙숙지간이고, 소속원들 역시 상대를 고깝게 여긴다. 이들의 싸움은 단순한 밥그릇 다툼이 아니다. 런던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민자와 토착민,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구분되는 구질서와 신질서, 세계화와 민족주의 세력 사이의 충돌이다.
블랙 캡의 시원은 16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합승마차였던 블랙 캡의 배지를 얻기 위해 오늘날의 택시기사에 해당하는 마부들은 2만 5,000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런던의 거리와 10만 개의 주요 지형지물을 아우르는 이른바 “날리지”(Knowledge)를 달달 외워야 했다. 날리지를 머릿속에 통째에 저장하고 나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기사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공부를 시작한 다음 배지를 취득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4년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블랙 캡의 기사는 대부분 백인 토박이들이다.
반면 우버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직전 현지에 첫 선을 보였다. 그렇지만 현재 기사 수는 4만 명으로 2만 1,000명에 불과한 블랙 캡 기사의 두 배에 가깝다. 우버 기사는 날리지 대신 위성 네비게이션 시스템에 의지해 길을 찾는다. 기사는 유색인종이 대부분이고, 이들 중 상당수는 바카리와 같은 이민자들이다.
우버 요금은 블랙 캡에 비해 30% 가량 저렴하다. 이를 두고 블랙 캡 기사들은 “우리를 시장에서 밀어내려는 전략”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월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블랙 캡이 사라진 런던은 빅 벤이 없는 런던과 마찬가지”라며 우버를 향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다.
브렉시트로 알려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여부를 가리기 위한 투표는 세계화로 이익을 보는 집단과, 이민과 업무자동화에 위협을 느끼는 집단 사이의 극명한 간극을 드러냈다. 바카리를 비롯해 런던시민 10명당 여섯 명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반면 월시를 포함한 대다수의 블랙 캡 기사들은 반대의사를 밝혔다.
모로코 농부의 딸인 바카리와 북부 런던 공사판 인부의 아들인 월시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하루빨리 중산층에 편입돼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일한 목표를 지닌 바카리와 월시는 서로 적대 진영에 속한 채 런던의 시가지를 무대로 낮은 수준의 게릴라전을 벌이는 장기판의 졸인 셈이다.
바카리에게 블랙 캡은 포퓰리즘(대중주의)과 인종주의의 결정체다. 반면 월시에게 우버는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의 총합이다.
월시는 우버가 단순히 전통적 사업모델을 망가뜨리고 있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런던의 문화 자체를 말살하고 있다고 볼 멘 소리를 내지른다.
월시 자신도 날리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주 6일 스쿠터를 타고 3년간 총 2,000마일에 달하는 런던의 거리를 종횡으로 누비며 도로명을 외웠고 면허시험을 통과한 후 블랙 캡을 장만해 내부치장을 하느라 4만 5,000파운드(미화 5만 8,000달러)를 투자했다.
도전자의 70%가 초반에 나가떨어진다는 날리지 습득 단계를 거치면 면접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20분 동안 진행되는 면접시험에서 시험관의 까다로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런던의 좁다란 샛길까지 바싹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월시는 1994년 11월 10일 꿈에서도 그리던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3년이라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안정된 일자리를 잡은 그에게 중산층으로의 편입은 이제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한편 바카리는 이민 오기 전까지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 본적이 없는 모로코 ‘촌색시’였다. 물론 정규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다.
19년 전 영국으로 이민 온 후 내리 다섯 명의 자녀를 낳은 그녀는 막내를 임신하고 있던 2010년의 어느 날 버스를 타려다 흑인 버스기사로부터 “망할 놈의 외국인들은 이곳에 와서 꾸역꾸역 애만 낳는다”는 폭언을 들었다. 젖먹이로부터 걸음마 단계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자녀를 건사해가며 만삭의 몸으로 버스를 타려 쩔쩔매다가 갈 길 바쁜 기사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 것이었다.
그날 밤 바카리는 남편과 의논해 차를 사기로 결정했고, 곧바로 운전면허를 땄다. 하지만 소심하고 겁 많은 남편은 아직도 운전을 하지 못한다.
남편과 달리 자신이 운전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카리는 결국 1년 전 우버를 시작했다.
우버 기사 등록절차는 너무나 간단했다. 일요일 우버 지역관리사무소로 나가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간단한 온라인 테스트를 거치자 즉석에서 우버기사 증명서가 발급됐다. 이어 의무적으로 규정된 당국의 신원조회를 거쳐 런던교통국으로부터 영업자 라이선스를 발급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주 정도였다.
보험과 개스비, 매주 2회의 세차비를 제한 그녀의 주당 평균 수입은 300 파운드 정도. 수퍼마켓 임시직원인 남편의 소득과 합쳐봤자 정부의 주택비지원이 없이는 다섯 자녀와 함께 생활하기에 빠듯한 액수다. 월시는 우버가 상륙하기 이전 하루 20여명의 손님을 태웠는데 요즘은 다섯 명 정도가 고작이라고 푸념한다. 게다가 자율주행차량이 보급되면 우버건 블랙 캡이건 기사들부터 도끼질을 당할 게 뻔하다. 블랙 캡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월시는 블랙 캡이 시대의 변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예를 들어 지난 가을에야 차량 내 크레딧카드 결제기 설치가 의무화됐고, 고객호출신호기는 규격 통일이 되지 않아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는 아직도 우버 앱보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날리지가 훨씬 유용하고 효율성 또한 높다고 확신한다.
우버는 정확한 주소를 모르면 목적지에 갈 수가 없고, 교통체증이 심할 때 지름길을 정확히 찾아내지도 못한다. 게다가 거리의 별칭엔 깜깜하고 맛집과 전문점 등에 관한 정보 역시 보잘 것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월시는 “제 아무리 네비게이션보다 나은 머릿속 지도를 갖고 있다 해도 블랙 캡을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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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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