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효성 씨는= 1937년생인 그는 평양에서 부친이 목사인 모태신앙 가정에서 성장했다. 열 살이던 1947년 월남해 피난지인 대구에서 경북중학교와 서울의 용산고를 다녔다. 클래식 음악 출판사를 운영하다 도미해서는 치과기공사로 일하다 은퇴했으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칼을 잡는다. 주재(主材)인 대나무를 자르고 붙이고 샌드페이퍼로 갈고…. 평저선(平底船)의 밑바닥을 튼튼히 한 후 몸체의 형태를 만든다. 배는 제 본연의 본성을 일깨우며 점차 균형미를 갖춰간다. 이윽고 섬세한 손길로 포를 설치하고 돛대를 세운다. 기교가 꽃피는 시간이다. 완벽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화룡점정의 용머리가 붙여지면 400여 년 전 남해 바다에 수장됐던 거북선은 금세라도 일본 함대를 향해 불을 뿜을 듯하다. 그가 걸작을 창조해가는 작업실에는 오직 그와 정심(定心)의 시간의 흐름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창조한 석고상과 사랑에 빠졌던 피그말리온처럼 장인은 자신이 빚어낸 거북선의 용태에 넋을 잃는다. 버지니아 버크, 채효성 씨(81)의 작업실은 매일 매일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다.
2세들 정체성 교육 위해 사재 털어
여든에 대나무 자르고 붙이고 구슬땀
전세계 한국학교에 보급운동 추진 꿈
올해 여든을 넘긴 채 씨가 거북선에 몰입하게 된 건 지난해 여름. 이순신 숭모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내원 씨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이 선생과 이순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거북선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우리 2세들의 정체성 교육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겁니다.”
막상 장담은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치과기공사로 살아온 자신의 손끝의 기예(技藝)를 믿었지만 이미 팔순의 나이였다.
게다가 거북선이라곤 사진으로 얼핏 본 게 다였다.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고, 설계도도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미지의 공예였다.
이내원 선생이 준 모형을 바탕으로 연구에 착수했다. 배 모형회사들의 홈페이지를 뒤지고 해군연구소의 거북선 자료를 찾았다.
“취미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 남길 제대로 된 작품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감 때문에 고심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하고 밤잠을 못자고 구상했습니다.”
적절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공예사는 물론 장난감 가게, 한복집, 홈 디포, 아마존까지 훑고 다녔다. 물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대나무를 자르느라 그의 손은 붓기 일쑤였다.
로댕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점토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지만 그는 신념과 과학의 힘으로 마침내 1호를 완성했다. 가로 59cm, 세로 18cm, 높이 56cm. 착수한 지 근 두 달 만에 교탈천공(巧奪天工)의 진경이 펼쳐진 것이다.
“첫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아직도 제 마음에 다 차지는 않습니다. 기술적 결함을 보완해 더 정밀하고 체계적이며 더 완전한 거북선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거북선 모형을 만들고 있는 채효성씨(왼쪽)와 완성된 거북선 모형.
그동안 모두 4개의 거북선 모형을 제작했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와 미주이순신교육본부가 실시한 이순신 글쓰기 공모전 상품으로, 하와이 한국학교에, 그리고 이순신 교육의 후원자인 박용걸 씨에게 증정됐다. 처녀작은 기념으로 집에 보관 중이다.
요즘도 그는 매일 아침 조반을 끝내고 그의 타운 홈 지하실에 있는 작업실에 내려간다. 하루 7-8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밤 10시30분까지 거북선과 씨름한다.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 보면 소화가 안 돼 약을 먹기도 하고 먼지와의 싸움도 벌인다. 작업장이 추워 종일 히터를 털어놓고 일하다 보니 전기세가 평소의 2배 이상 나온다. 은퇴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정도 아닌데 사재를 털어 재료를 구입하다보면 부인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불평 한마디 않는 아내가 고맙다고 채 씨는 말한다.
“몸만 건강하면 한해에 10척은 가능해요. 요즘 거북선 앞머리의 용 이빨을 제작 중인데 앞니를 1mm 크기로 깎고 있으니 세상 말로 좀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후세들에 제대로 된 거북선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정교한 거북선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않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3월까지 3개를 만들 요량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기증할 용처는 이미 정해놓았다. 한국문화를 미국사회에 알리는 워싱턴한국문화원과 미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다.
워싱턴 지역은 물론 미 전국의 한국학교에도 하나씩 기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전 세계의 한국학교에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의 요체인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보낼 계획이다. 그래서 ‘거북선 만보 운동’을 하려 한다. 거북선 만들어 보내기 캠페인이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미국 해군연구소(USNI)에 의해 세계 7대 군함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우리 민족의 자랑이자 긍지입니다. 우리 후손들의 정체성을 고양시키는 사업은 제 혼자 힘으로는 힘듭니다. 재정도 시간도 충분치 않기에 뜻 있는 분들이 동참해 도와주시면 우리 2세, 3세들이 더 자랑스러운 인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부터 한글을 노래로 배우는 ‘일석이조’ 교재를 만들어 무료로 보급하는 등 2세들의 정체성 교육에 앞장서왔다. 한글과 한국문화가 말살된 왜정시대에 겪은 설움이 그를 팔순 고령에도 거북선 모형 만들기 나서게 한 이유다.
채효성 씨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누군가 긍지를 갖고 이 거북선 모형사업을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며 “앞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것 밖에 더 있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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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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