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고 있다. 꽤 오래 걸어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둑해지는 해넘이 시간이라 그럴까. 강가 쪽으로 걸음을 옮겨 본다. 이미 나무 위쪽은 어둠에 물들었고 발그레 익은 홍시 빛 노을이 나무둥치 쪽을 띠처럼 두르고 있다. 숲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오늘 하루치의 빛을 붙들고 주어진 시간을 마무리하려나 보다.
강기슭에 거무스레한 물체가 보인다. 윤곽만 드러나는데 두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초로의 남자와 청년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와 아들 같다. 나직한 그들 음성이 물소리와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며 강물을 따라 흐른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나는 방해가 될까봐 발소리를 누르며 멀찌감치 떨어져 걷다가,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오래 전에 지나간 우리 가족의 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민 오기 바로 전 해였다. 우리 부부는 고국을 떠나기 바로 전까지도 이민을 결정한 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를 두고 고민했다. 남편이 맏아들이라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남편은 직장을 정리하기에 앞서, 캐나다에 미리 가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갔다. 두 달 동안 아들과 생활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둘 다 표현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그들은 토론토 공항에서 무척이나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나 보았다. 출국장에 들어서다 힐끗 돌아본 남편 시야에 아들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핑 도는 게 들어왔고, 그 순간 초로의 남편 가슴이 울컥했다. 그건 자식이 부모 나이에 이르러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일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열네 시간이 남편에게는, 아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삶과 가족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는 게 뭔지 가정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온 50년 가까운 세월을 되돌아보며, 드물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거였다.
고국에서 지니고 누리던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울음을 참는 네 눈을 보았을 때였다고. 남편은 그날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어느 저녁 식탁에서 성인이 된 아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남편과 아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밥을 먹을 때나 가구를 조립할 때, 눈을 치우거나 드라이브하면서도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나이 차이 많은 형제처럼 지내곤 했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나는 그들 부자의 오롯한 시간이 훗날 얼마나 소중한 추억으로 살아날까 싶어 될 수 있으면 그들만의 시간을 많이 마련해주려 했다.
강가에 있던 그들도, 이 땅의 많은 아버지와 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을지도 모를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멋모르고 태어난 어린 생명이던 아들이 이제 성인 문턱에 들어설 만큼 의젓하게 자랐으니, 나이 든 아버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인들 오죽 많을까.
세상 문을 먼저 연 아버지로서, 그가 숨 쉰 세상의 대기와 발이 닳도록 밟고 다닌 흙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은 또 얼마나 절절하겠는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고 아버지밖에 해줄 수 없는 말이 따로 있거늘,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있었으리라.
그들 곁을 지나오면서 나는 청년의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잠시 스쳤었다. 그러나 그 엄마도 어쩌면 나처럼 부자만의 시간을 마련해주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정이란 아마 그런 것일 터. 서로의 가슴 밑바닥에 묵직하니 들여놓은 잉걸불 같은 것.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늘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살아있는 잠재적인 불꽃. 행복하고 편안할 때는 있는 줄도 모르다가도, 아프고 시린 바람이 불면 어디에 그리 큰 불씨가 있었느냐 싶게 강한 불길을 일으켜 무서운 힘으로 서로를 감싸고 보호하는 존재, 그런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닐는지.
숲을 한 바퀴 돌아왔는데도 그들은 아직 자리를 정물처럼 지키며 대화에 빠져있다. 그 정도로 오랫동안 잔잔히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관계라면 안심해도 좋을 부자 간일 것이다. 그런 소중한 시간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오늘 강가에서 나눈 시간을 오래 기억하며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가리라.
그리고 어쩌면, 아들이 지금 제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는,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게 되리라.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의 야속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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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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