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여성의 낙태권 논쟁이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에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의 구호로 산아제한을 장려하며 사실상 여성들의 낙태를 은근히 유도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시절을 살다가 미국에 오니 이른바 ‘프로 라이프’ 대 ‘프로 초이스’ 진영이 곳곳에서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선진국이라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 갔었다. 그러다가 점점 뜨악하게 된 것이 프로 라이프 진영의 격렬한 폭력적 시위 양상 때문이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프로 라이프 진영의 반발은 점차 극단적으로 치달았으며, 마침내 “우리의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태세로 낙태 클리닉에 방화를 하거나, 폭탄을 투척하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이어 낙태시술 의사까지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1994년 장로교 목사였던 폴 힐이 낙태시술 의사와 그의 경호원을 살해하고 플로리다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건이었다(사형은 2003년 집행되었고, 그는 일부 극단론자들에 의해 ‘순교자’로 추앙되었다).
이어 1998년 뉴욕 주의 의사 버넷 슬레피안이, 2009년에는 캔서스 주의 의사 조지 틸러가 각각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이들이 과연 생명을 존중하는 집단이 맞기는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은 불과 한 세대 만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산아제한 정책에서 출산장려 정책으로 선회했고, 그에 따라 낙태법도 보다 규제하는 쪽으로 개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법 폐지를 청원한 수가 20만명(자기결정권을 내세운 젊은 여성들이 주를 이룬다)이 넘어섬에 따라 청와대측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청원 내용은 한국의 현행 낙태법이 강간이나 유전적 질환, 근친상간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데다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있어 불합리하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일단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낙태죄 폐지 여부를 공론화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2012년 낙태법을 합헌으로 판결했던 헌법재판소도 지난 2월부터 이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을 접수해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져 기존 결정을 뒤집을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문제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쎄, 총기류만 동원되지 않는다 뿐이지 30여년 전 미국사회 못지않게 곳곳에서 격렬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까 우려된다면 지나친 걱정일까? 벌써부터 종교계를 비롯한 많은 진영이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기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한국 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최근 “’원치 않는 출산이 출산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는 생각은 매우 주관적인 생각으로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극히 위험한 반생명적 발상“이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인간생명은 천하를 다 합한 가치보다도 언제나 무거운 가치“라고 입장을 밝혔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생명을 존중하여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 비혼모들의 결단을 존중하고 이들이 그 생명을 키워나가는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가.
생명의 가치를 내세워 낙태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미 태어난 생명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 지에도 관심을 갖고, 그들이 제대로 자라는 데 자신은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돌아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들의 생각 속에 혹시라도 “몸을 함부로 굴린 여자”에 대한 분노와 정죄의 마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낙태를 택하는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많다. 정말로 생명을 존중한다면 여성 혼자서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입양을 쉬쉬하는 문화부터 바꾸어야 한다.
얼마 있으면 예수가 탄생하신 크리스마스이다. 진정으로 예수의 삶을 따르려는 기독교인이라면 입으로 의로운 말을 내뱉기 전에 자신의 말이 비난과 정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상처받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라 따뜻한 응원과 격려, 그리고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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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 국제로타리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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