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많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이론을 정립해간다. 편견을 버리고 정직하게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심리상 매우 어려운 일이며 과학자들의 기득권과 자존심도 한 몫 할 것이다. 한번 정설로 잡힌 이론들은 그것이 틀렸다고 해도 반박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알고 있다.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 연구에도 많은 이견들이 있다. 예전에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변화가 시간의 장구함보다는 특별한 사건, 격변에 의해서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북극 빙하에 대하여 늘 궁금하던 차에 아이슬란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남극의 대륙과 빙하와는 달리, 북극점의 주변에는 대륙이 없고 겨울에는 대부분이 두께 1∼15m의 빙원이고 여름에는 부빙(浮氷)이나 빙산이 흘러 베링해와 북대서양으로 이동한다.
아이슬란드는 북아메리카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어 지진과 화산 폭발이 끊이지 않는다. 1783년 라키 화산 폭발로 인구의 10%가 독성가스로 죽고 몇 년 간 이상기후도 이어졌다. 2010년 4월에도 화산 폭발로 생긴 화산재로 항공 대란이 일어났었다.
아이슬란드는 화산의 불과 얼음의 땅이다. 거대한 빙하가 녹아서 바다로 떨어지는 에메랄드 색 빙산이 있는가 하면 펄펄 끓는 온천들이 있어 끓는 물을 이용하여 도시 60% 이상의 난방을 하고 있다. 화산과 빙하가 어떻게 연관이 있을까?
빙하는 바다가 얼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눈이 계속 쌓여 밀도가 높아지면서 비중이 0.8까지 이르면 얼음이 되고 점점 커져 거대한 얼음덩이가 사계절 녹지 않을 때 빙하가 된다.
오늘날 지표의 10%가 빙하인데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하두께는 3,000-4,000m이며 북극 쪽의 빙하는 더 얇다. 전문가들은 과거 빙하가 평균 700m의 두께로 육지의 30%를 뒤덮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구에 빙하시대는 어떻게 오게 된 것 일까? 여러 가설 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론은 이렇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원에 가까운 궤도를 돌다가 타원에 가까워지는 궤도로 변화하는데 이 주기가 약 10만년으로 추정한다. 또 지구의 자전축도 22도-24.5도 사이를 주기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지구 기후에 영향을 주어 빙하시대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문제점은 천문학적 주기변화가 있어도 태양 복사 에너지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여 빙하시대를 이끌 만큼은 아니며 북반구와 남반구가 동시에 빙하시대가 발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빙하가 생기기 위해서는 눈이 많이 내려야 하며 녹지 않을 만큼 기온이 낮아야 한다. 눈이 많이 오기 위해서는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 물의 증발이 많아야하고 그 수분이 눈이 되어 떨어지며 녹지 않아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 전 지구적 활발한 화산활동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화산 폭발 때 화산재와 함께 분출된 미세먼지가 한동안 대기 중에 머물면서 태양에서 오는 복사 에너지를 차단해 대기온도를 낮춘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폭발로 지구 전체의 대기 온도가 떨어져 이듬해는 여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 때 미국에는 여름에 눈보라가 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추위가 탐보라 화산 폭발에 의한 것만은 아니고 몇 년 전부터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화산들 연쇄폭발의 축적된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쌓여 빙하가 되기 위해서 아주 장구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건이 맞으면 빠른 시간 내에도 눈이 엄청나게 쌓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그린란드에 버려진 전투기가 불과 46년 후에 78m 얼음아래에서 발견된 사건은 짧은 시간 내에 눈이 많이 쌓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빙하의 생성도 빠른 세월 안에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둘러보면서 빙하는 엄청난 전 지구적인 화산활동에 의해 빠른 시간에 올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라 전체가 용암의 산이요 눈과 빙하가 녹은 물이 계곡 사이로 떨어지는 독특한 모양의 폭포들이 곳곳에 있었다. 아이슬란드를 돌면서 불과 얼음의 조화 그리고 그 사이의 싱그러운 초록평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지구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의 섬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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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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