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다뉴브(헝가리어로는 두나)는 저녁 황금 햇살을 받으며 서두르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월츠를 물결치고 있었다. 해 진 후 다뉴브 위를 만보하는 유람선에 앉아 불빛에 안긴 위풍당당한 의사당(사진)을 비롯해 강 양안에 의젓이 서 있는 옛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슈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의 월츠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난 달 영화와 TV시리즈 세트방문과 스타 인터뷰 차 부다페스트와 런던에 다녀왔다. 헝가리 공항이름은 이 나라가 낳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의 이름을 딴 부다페스트 프란츠 리스트 국제공항인데 국제공항치곤 초라하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부다페스트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마치 고전을 읽듯 볼수록 도시의 시간을 잊어버린 자태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 깨닫게 되는듯하다. 이 곳에서 영화촬영이 자주 있는 이유도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또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인건비가 싼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고전영화 세트라고 해도 되겠다.
근처에서 창녀들이 호객을 하는 페스트의 숙소인 포 시즌스 호텔 앞의 사자머리가 지키고 있는 150년 된 늠름한 체인브리지가 나라의 한 때 강건하고 기품 있던 내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은 줄어들었지만 헝가리는 과거 하이든을 전속 음악가로 고용해 먹여 살렸던 귀족 에스터하지의 나라요 중부유럽을 군림했던 막강한 합스부르크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의 파트너였다.
강 건너 이 다리 건너편 부다의 언덕 꼭대기 캐슬 힐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라는 말답게 고상하고 아름답다. TV시리즈 ‘에일리어니스트’(The Alienist)의 배우들과 함께 캐슬 힐의 피셔멘즈 배스티언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물론 굴라쉬가 나왔다. 굴라쉬는 한국의 찌개 같아 해외여행 때마다 서양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하는 내겐 꿀맛이다.
로빈 후드의 젊은 시절을 그린 ‘로빈 후드:오리진’(Robin Hood:Origins)의 세트를 찾아간 날은 춥고 바람이 거셌다. 이 때문에 나는 헝가리감기에 걸려 귀국 후 며칠을 고생했다. 로빈 후드(태론 에저턴)가 전쟁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애인 매리안(이브 휴선)과 작별을 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의상과 세트를 보니 현대적 터치다. 로빈 후드의 동료 리틀 존으로는 제이미 팍스가 그리고 로빈 후드의 천적인 셰리프로는 각기 벤 멘델손이 나온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막고 찍고 있는 ‘에일리어니스트’는 살인 미스터리 스릴러. 19세기 말 뉴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푸는 경찰과 심리학자(대니얼 브륄)의 얘기로 제목은 심리학자를 나타낸 것. 루크 에반스와 다코다 패닝이 공연하는 이 시리즈는 올 해 말 TNT를 통해 방영된다. 그런데 촬영 현장을 비롯해 주위 건물들이 모두 옛날 영화를 찍으려고 세운 건물들처럼 핏기가 없다. 부다페스트의 건물들이 다 옛날 그대로 잘 보존된 것은 반드시 오래된 것을 잘 간직하려는 의도뿐만이 아니라 돈이 없어 보수를 못해 그렇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다페스트를 떠나 런던에 왔다. 난 런던을 매우 좋아한다. 도시가 아늑한데 사람들이 떼를 지어 길거리에서도 맥주를 마시는 펍들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 찍고 있는 네트플릭스의 시리즈 ‘크라운’(Crown)은 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얘기한다. 작년에 방영된 시즌1은 골든 글로브 TV드라마 부문과 엘리자베스 역의 클레어 포이가 각기 작품상과 주연상을 받았다.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배우들과의 인터뷰 후 엘리자베스와 그의 남편 필립(맷 스미스)이 궁정에 마련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 촬영현장엘 들렀다. 잘 차려 입은 여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지체 높은 귀빈들이 원을 그리며 월츠를 춘다. 잠시 환상적이요 로맨틱한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다뉴브 위에서 이어 다시 월츠의 감미로운 율동에 발장단을 쳤다.
마침 화창한 날씨에 시간이 나 런던에 오면 의식처럼 치루는 템즈의 워털루 브리지에로의 행보에 나섰다. 채링 크로스를 거쳐 워털루 브리지와 얼마 전 테러가 일어난 웨스트민스터 브리지를 지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들이 놓인 광장에 섰다.
떠나기 전날 매기 존스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식당은 지난 1960년대 엘리자베스여왕의 동생 마가렛공주가 궁궐을 빠져나와 사진작가 애인 안토니 암스트롱-존스와 데이트를 하던 곳. 마가렛은 예약 시 ‘매기 존스’라는 가명을 써 주인이 그 후 이름을 매기 존스로 바꿨다. 평범한 식당에는 요즘에도 왕족들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원래 영국음식이 맛이 없다곤 하지만 이 집 음식도 무미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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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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