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엣 로빈스는 죽음의 침상에서도 영화를 봤다. 귀가 잘 안 들려 자막이 있는 외국어 영화들을 봤는데 해리엣은 원래 외국어 영화에 정통하고 또 그 것들을 사랑했다. 해리엣이 얼마 전 96 세로 타계했다.
나는 해리엣을 생전 나의 ‘영화 대모’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었다. 해리엣과 역시 영화통인 해리엣의 남편 샘과 나는 종종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해리엣의 집에서 술을 들면서 영화 얘기를 나누곤 했다. 샘은 해리엣 보다 두 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내가 해리엣을 나의 ‘영화 대모’라고 부른 까닭은 내가 해리엣 때문에 LA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이 됐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등산모를 쓰고 다니던 해리엣을 알게 된 것은 영화담당 기자들을 위한 시사회장에서였다.
LAFCA 회원이던 해리엣은 나를 볼 때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구성된 LA의 코리안 커뮤니티를 대신해 미스터 팍이 우리 회원이 되기를 권한다”며 나를 동료 회원들에게 소개하면서 즉석 로비를 하곤 했다.
이와 함께 내가 LAFCA 회원이 되는데 큰 힘을 써준 사람이 홍보회사 포가쳅스키사(현재의 MPRM)의 한국계 부사장 로라 김이었다. 로라는 한편으로는 주저하는 나를 다그치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 LAFCA회장이었던 엠마누엘 레비(현재 나와 함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회원)에게 적극적인 로비를 하면서 나를 밀어줬다.
내가 LAFCA 회원 가입을 망설였던 이유는 한국어로 영화평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라 오피니언 기자와 스페인어로 방송하는 유니비전 기자가 LAFC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영어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쓰는 나의 가입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두 스페인어 언론매체는 LAFCA 회원이 아니다.
두 사람의 적극적 지원 속에 나는 지난 1998년 4월 해리엣과 LA타임스의 영화비평가 케네스 투란의 추천과 회원들의 심사와 투표를 거쳐 LAFCA 회원이 되었다. 당시 LA타임스, 타임, 뉴스위크, 버라이어티, 할리웃 리포터 및 USA 투데이 등 막강한 언론매체의 기자들로 구성된 LAFCA에 가입했으니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해리엣을 나의 ‘영화 대모’라 불러왔었다.
지난 1975년에 창립된 LAFCA는 LA지역에서 활동하는 활자, 방송 및 전자매체 영화비평가들로 구성된 권위 있고 영향력 강한 단체로 현 회원은 54명. 나는 지난 2006년에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이 됨으로써 나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셈이다. 해리엣 덕분이라고 하겠다.
부산 피난시절 꼬마가 혼자서 대낮부터 무성영화를 보면서 영화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란 것을 깨달은 뒤로 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백일몽을 꾸고 있다.
해리엣은 지난 1940년대 초 뉴욕에서 LA로 이주, 권위 있는 액터즈 랩과 관련해 일하면서 연극과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이어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가 극단 레이버 디어터 작품을 유엔을 위해 공연하는 일을 돕다가 이 도시에서 만난 샘과 결혼, 1950년대 초 둘이 함께 다시 LA로 돌아왔다.
이어 독립영화 배급사에 고용돼 영화를 사기 위해 연중 내내 영화시장과 칸, 토론토 및 몬트리얼 등 영화제를 찾아 다녔다. 나도 오래 전에 업무 차 토론토영화제에 온 해리엣과 샘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해리엣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인 감독과 배우들을 알게 됐고 외국어영화의 전문가가 되었다. 나도 해리엣과 샘처럼 할리웃영화 보다는 외국어영화를 더 좋아해 우린 만나면 주로 외국어영화에 관해 얘기를 나눴었다.
배급회사를 떠난 해리엣은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 비평을 써 영화를 선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여러 미디아에 기고를 하면서 지난 1980년대 초 LAFCA회원이 되었다.
이와 함께 해리엣은 필르멕스영화제를 포함해 LA지역 영화제와 특별행사에 관여했고 LA 인근 베니스의 폭스베니스극장의 외국어 영화상영을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해리엣은 이밖에도 UCLA 필름&TV 아카이브의 ‘비평가들의 선택’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당시만 해도 무명씨였던 독립영화인인 찰스 버넷감독 등의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했다.
해리엣과 파이프 담배를 즐기던 샘은 늘 시사회에 함께 참석하곤 했다. 나는 이들을 친구 겸 부모처럼 여기면서 우정을 즐겼었다. 항상 명랑하고 활기찬 만년 소녀 같던 해리엣은 양로병원의 침상에 누워서도 LAFCA회원들에게 외국어영화를 갖다 달라고 부탁해 영화를 봤다.
내가 해리엣에게 은혜를 갚은 것이 있다면 해리엣이 나이를 먹으면서 글 쓸 매체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신문에 그의 글을 번역해 게재한 것이다. 이제 해리엣은 하늘에서 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날 만나면 늘 “H.J.”하며 반가워하던 해리엣의 음성이 귓전을 맴돈다. 굿바이 해리엣.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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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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