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백담사라고 하면 1919년 3월 1일 일본식민지 시대를 거부한 애국자, 독립선언서에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한 한용운의 절이 떠오른다. 그 절에서 유명한 그의 “님의 침묵”이 쓰여젔다.
그래서 백담사는 한국 문화 지도에 크게 떠있는 절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다음에 현재의 백담사 주지 스님 조오현님의 시조시집, “적멸을 위하여”가 다시 백담사를 더 유명한 한국 문화의 공간으로 떠 오르게 하고 있다.
이미 백담사 아래 산촌을 만해마을로 정착시키고 만해상을 수여하며 학술대회를 열고 있는 반해 축제가 무산 조오현 스님을 큰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만해 마을이나 만해 축제의 주인이 바로 무산 조오현인 사실을 알면 이 영문시집 “적멸을 위하여”는 그리 놀랄만한 간행은 아니다.
영문시집의 젠 시조 시집이란 말이 거슬린다. 젠은 선의 일본어다. 선이나 참선이 한국불교의 명상을 뜻 하나 일본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으니 젠이란 말을 써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선 시조. 선이 명상이라면 그 선이 바로 한국 불교의 중심사상이 아니겠는가. 한국불교의 참선을 바로 시조로 전환한 공이 무산 스님의 시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가 명상의 산물이라면 선과 시조는 거의 하나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선이나 젠이란 수식어가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스님이 자유시를 쓸수도 있고 정형시를 쓸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시보다 정형시, 시조가 명상에 더 가까운 문학이 아니겠는가. 스님의 시집에 108편의 명상 시조가 들어있다는 시집의 부제는 그래서 불필요한 것, 아닌가 모르겠다.
한국의 전통적인 시조는 운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국인이 함께 호흡했던 시조문학은 바로 시문학이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정형의 시조는 사라지고 자유시가 범람하게 되었고 다시 시조를 찾아가는 복고주의 바람도 만만찮다.
그러나 다수의 한국인들은 시조라고 하면 황진이의 동짓달, 윤선도의 오우가, 어부사시사, 그런 아름다운 시조를 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12세기 고려시대 참선의 새로운 불교를 일으킨 혜심 스님의 목련과 연꽃을 연상하게 된다. 혜심의 영문시집이 몇 년전 Magnolia and Lotus로 나왔다. 정형의 시 안에는 음악성이 있다. 그래서 청아하게 시조를 낭송할수 있고 노래로 부를수 있다.
무산 스님의 선 시조는 정형을 갖추고 있지만 갚은 사상을 담고 있다. 선을 아름다운 나무 속살의 고운 결로 비유하면서 시는 나무 몸 속에 박힌 옹이로 비유한 시조 한편은 수작이다. 선과 시의 차이를 이렇게 극명하게 나타낸 기지에 박수를 보낸다. 생각하게 하는 시조, 그의 서문은 산문시라고 말해도 좋다. 물 속에 들어있는 달을 노래한 시인이 한, 둘이 아니지만 무산 스님도 물 위에 뜬 달을 건지려 한다. 아니 건지려하는 이태백에게 그냥 바라보라고 말한다.
“적멸을 위하여”는 산 속에 사는 스님의 시. 지나가는 바람에 생각을 버리는 스님, 피고 지는 꽃들에 생각을 담는 스님, 이승과 저승을 쉽게 넘나드는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시조의 중흥을 기약하게 하는 시집이다. 전통적인 시조를 변형시켜 지독하게 현학적인 모호성의 현대시를 반성하게 한다면 무산 스님은 하산해도 되리라.
하루를 살다가는 하루살이와 고희를 넘어선 스님의 삶을 비교하는 스님, 80평생 수도한 노스님, 100년을 더 살아도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스님이 바로 “아득한 성자”다. 이 시집에 모인 108편의 선 시조는 그런 아득한 성자의 자화상이다. 아득한 성자, 무산 스님의 대표작인 듯 하다.
아득한 성자 -조오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2003년 콜럼비아 대학 출판부에서 한국 전통 시조 시집을 펴낸 것이 있고 내가 미국 일간지에 그 시집 서평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저명한 대학 출판사가 다시 한국의 스님 시조 시집을 내어놓았으니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모든 한국인의 일독을 권한다.
<
최연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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