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폐점 앞둔 블랑쉐 모피 최윤정 대표
▶ 아쉬움 남지만 지금이 쉴때… 글 쓰며 은퇴생활 즐기고파
“언제나 블랑쉐를 믿고, 자랑스러워한 고객들을 만난 저는 행운아죠.”
28년간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모피 디자이너 브랜드로 우뚝 서왔던 블랑쉐 모피가 내달 문을 닫는다. 아직도 오랜 단골들과 뉴욕•뉴저지 멋쟁이들이 맨하탄 매장을 드나들고 있지만, 최윤정(70) 대표는 지난 해 가을 갑작스럽게 폐점을 결심했다.
최 대표는 “지난해 11월, 20년 이상 이 곳을 찾던 고객들이 유난히 많이 방문, 아직도 새 옷 같다는 칭찬을 전하고 갔다”며 “그 칭찬을 들으며 기쁘기도 했지만 문득 지금이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좌충우돌 이민 생활을 시작했던 젊은 엄마에서 이제는 내노라 하는 모피 디자이너 브랜드로 사업을 키웠지만, 이제는 사업을 접고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삶을 돌아보며 노후 생활을 누리겠다는 결심을 한 것.
국문학도였던 최 대표가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결혼한 지 일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영국 런던을 거쳐 뉴욕 FIT 유학을 오면서부터다. 애초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오른 영국 유학길이었지만, 한국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이 그리워, 공부 대신 런던의 주영 한국 대사관에 취직을 했다. 당시 아들을 데려올 수 있는 유일한 비자가 관용 비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들과 3년간의 영국 생활 후 1978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며 본격적인 디자이너로 성장을 시작하게 됐다.
수업에서는 유일한 아시안 여학생이자 31살의 만학도였지만 한학기 만에 자신의 작품이 교내 로비에 전시 될 정도로 최 대표는 월등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바느질과 디자인하는 시간이 아까워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아들이 진학을 할 때마다 학교 근처로 이사를 다니며, 엄마로, 디자이너로 치열하게 살았다. 졸업 후 유태인 의류회사인 투게더 파비아나, 모피 전문회사인 크리스티나 반을 거쳐, 1989년 블랑쉐 모피를 설립됐다.
최 대표는 “아들이 UC버클리로 진학하면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그럴수록 일에 매달렸다”며 “이대로 죽을 순 없으니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연것이 블랑쉐 모피”라고 말했다.
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남편이 남긴 유산을 모아 100만달러로 창업을 했지만, 2년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정도로 블랑쉐 모피는 시작부터 화려했다.
최 대표는 “밍크가 몇 마리가 들어가는지, 원가는 얼마가 들어가는지, 계산을 하지 않고, 오직 품질과 디자인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당시에 이미 1만5000달러의 고가에 팔렸지만, 제대로 된 옷을 제값이 판다는 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뉴욕의 돈 좀 만진다는 사람들은 블랑쉐 모피로 몰렸다. 과감한 디자인과 파격적인 시도가 더해지면서, 봉제 공장과 야채 가게, 드라이클리닝, 가발 업체 등 사업만 했다하면 돈을 긁어 모았다던 그 시절, 한인 큰손들이 가장 먼저 소문을 듣고 블랑쉐 모피를 찾았다. 지난 2007년 한국의 신세계 백화점에 진출, 블랑쉐 모피의 이름을 한국에서도 알려오고 있다.
한인과 체격이 비슷한 중국계, 유태인까지 가세, 매년 약 1000명의 여성들이 매장을 찾고 있다. 아메리칸 밍크가 최고이던 시절을 거치고, 중국 시장 개방 후 달라진 모피 트렌드를 목격하며, 사반세기 이상 모피에 인생을 바쳐온 최 대표는 아직도 매년 이탈리아에 출장을 다녀올 정도로 사업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최 대표는 “막상 접으려니까 아쉬움은 남지만, 무엇보다 고객 한사람 한사람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점이 가장 아쉽다”며 “세월이 지나, 엄마에 이어 딸이 옷을 사러 오고, 이 옷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동안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애지중지 키웠지만 의대생에서 요리사로 진로를 바꾸며 속을 썩이던 아들과의 1년간의 절연, 40대 중반에 재혼한 남편과의 사별 등 적지 않은 굴곡을 겪었지만 최 대표는 여전히 자신의 삶과 사업을‘행운’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의 아들은 후니 셰프로 알려진 스타 셰프 , 김훈이다.
최 대표는 “국문학을 전공, 글쓰기를 즐겼었기에 은퇴 후에는 다시 문학 소녀 시절로 돌아갈 계획”이라며 “지나간 삶에 대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글로 정리하며 은퇴 후 삶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료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고 이제는 쉴 때가 된 것 같다”며 “그 누구보다 옷을 사랑했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지만, 블랑쉐를 대를 이어 사랑하는 고객들을 만난 나는 정말 행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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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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