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롱!’ 일손을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긴다.
“동양인들은 대부분 쭈빗쭈빗하는 구나!”인천에서 소담한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영수가 댓글을 보내왔다. 방금 전 내가 올린 댄스 클래스 동영상에 대한 화답이다.
“그렇지? 아무래도 나는 멋쩍어서 선뜻 참가하질 못하겠더라구.”사람 좋은 영수는 33년 전 대전 탄방동 훈련소에서 6개월간 내무반 생활을 함께한 필승공군의 전우이다.
한국서는 금요일이면 ‘불타는 금요일’ 줄여서 ‘불금’이라며 삼겹살에 한잔 마시며 모두들 즐겁게 보낸다 한다. 이곳 스탠포드 대학 앞 다운타운도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역시 주말은 주말이다. 레스토랑마다 패티오까지 삼삼오오 점령한 친구, 연인들이 와인 잔을 부딪치며 한주간의 일들을 반추하거나 밀어를 나누면서 로맨틱한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른다.
내가 있는 곳은 다운타운에서 좀 떨어진 커뮤니티 센터. 금요일 저녁 볼룸댄스 교실에 모인 100여 명의 남녀 수강생들은 이웃을 고려해 볼륨을 최대한 낮춘 무선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남자 강사의 지도에 따라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다. 그러다 물 찬 제비처럼 날씬한 강사가 손을 들어 두 번 빙빙 돌리면, 남자들은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옮겨 파트너를 바꾼다.
한인 수강생들이 있어 간간이 한국어도 들려오고, 겸연쩍을 것도 없는 사교댄스인데도 나는 그 즐거워 보이는 대열에 들어가기가 영 어색하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미국에 와서 산지 15년째이건만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매일 다니는 YMCA에서도 수영과 자쿠지만 즐길 뿐, 다른 이들이 많이 하는 농구나 배구시합 한번 못해 봤다. 격렬한 에어로빅이라 할 수 있는 줌바, 오라클에서 일하는 중국계 친구 레이가 금요일마다 자원봉사로 가르치는 다이치나 요가 같은 클래스도 마찬가지다.
고국에 대한 향수를 유난히 자극하는 ‘불금’에 내가 하는 일이란 어쩌다 벨몬트 절친 집에 가서 솜씨 좋은 제수씨의 요리를 즐기는 것. 다양한 곡물을 넣은 영양밥에 훈제연어, 등심 바비큐, 아스파라거스 등과 곁들여 코로나 맥주로 반주를 하면서 담소를 한다.
아니면 2009년 항공기 엔진에 새떼가 충돌하여 위기를 맞았지만 기장과 승무원의 기지로 안전하게 불시착해 탑승자 155명 전원이 무사했던 감동 드라마 ‘설리’ 같은 영화를 본다. 혹은 스타벅스의 창가 호젓한 1인석에 앉아 엔진 느린 아이패드로 흘러간 음악을 들으며 페이스북 서핑을 하다 일본 큐슈지역 화산 폭발 뉴스에 그 지역에 산다는 일본인 페친에게 메신저를 보내 안부를 주고받기도 한다.
아니면 모르는 단어가 줄줄이 나와 스마트폰의 구글로 뜻을 찾으며 느리고 느리게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 같은 소설을 1년에 걸쳐 읽어내기도 한다. 모르는 단어를 찾고 또 찾아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어가며 읽었어도, 소설은 박경리 여사의 ‘토지’ 같은 구수한 한국어 소설처럼 단숨에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작가인 하퍼 리 여사는 평생 딱 두 권의 책으로 흑백 인종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앵무새 ~’는 내가 태어난 해인 1960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했다. 우리 어머니가 나신 해인 1926년 태어난 리 여사는 내가 그의 두번째 저서인 ‘파수꾼(Go Set a Watchman)’을 읽고 있던 지난 2월 90세로 타계할 때까지 앨러배머, 먼로빌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처녀작으로 퓰리처상을 받는다는 것은 메이저 리그 신인이 데뷔 첫해에 타격 삼관왕에 도루왕 까지 차지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위대한 메시지, 위대한 영감으로 우리 사회에 큰 등불을 밝혀준 위대한 영혼에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불금’에 해야 할 작은 일이 생겼다. 넷플릭스에 재가입하여 그레고리 펙 주연, 로벗 멀리건 감독의 1962년 작 ‘앵무새 죽이기’를 집에서 이 세상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감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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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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