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날개로 고국을 찾은 대형 새 한 마리.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순간의 숨죽은 듯한 고요가 꼭 어느 다른 나라 같았다. 어느 나라건 비행기가 착륙 하는 순간에는 갑자기 공기가 굳어지고 승객 전원이 알 수 없는 긴장과 침묵에 휩싸이는 현상이 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러지 않았었다. 철저한 침묵이 아니고 남을 제치고 빨리 내려야겠다는 미세한 수선거림이 있었지만 이번의 비행기 착륙 시에는 완전한 정적이 기내를 압도하고 있었다.
“아, 달라졌구나. 한국은 성장하고 있다.” 라고 남 몰래 탄성을 뿜어냈다 .
승객의 99%가 한국인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에 이미 나는 고국에 대한 안도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국의 민도는 날로 쑥쑥 자라는 오뉴월 풀포기 같다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거리를 메우고 있는 여인들의 옷차림에도 개성이 있었다. 과거에는 배우들의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모든 여성들이 닮은꼴이 되고자 따라하는 몰개성 시대를 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상에 관한한 남의 흉내를 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모두 “나는 나이고 싶다”는 알찬 성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개성이 숨 쉬고 있었고 의류에 관한 한 유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었다. 외국에서 40년을 훨씬 넘게 살아온 망향족의 눈에 고국인의 내적 성장이 보였을 때의 흐뭇함은 대단한 것이었다. 음식 문화에서도 엄청난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울둘목 가는길 >이라는 식당에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 일본에 살고 있는 자매까지 한자리에 모여서 만학도의 대학원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혈연의 끈질긴 엉킴, 누적된 그리움, 만났을 때의 안온함 그 자체가 이미 축복이었다. 축하를 받는다는 것은 문화를 읽어내는 일보다 훨씬 따스하다.
수필 제목 같은 <울둘목 가는길>이라는 식당 이름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시인, 아니 어느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일까, 울둘목과 이순신의 전사를 아는 인문학 연구가의 아이디어였을까.
식당의 음식 또한 특유함을 살리고자 고심하는 어여쁜 흔적이 보였다. 전통음식 재료를 가지고 재래의 특성을 살리면서 모양과 맛에서 특수성을 보이기 위한 정성이 지극하였다. 전통을 지키려고 몸부림친다기보다 전통적인 것을 가지고 새로워지려는 노력, 미각적인 면뿐 아니라 시각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짜고 맵고 진하고 뜨겁기 보다는 상큼하고 섬세하고 곱고 담백하려고 애쓰는 성의어린 음식들이었다.
차려내는 방법이나 음식을 내오는 순서에도 시대 감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즐비하게 차리는 전통 방식으로부터의 변화였다. 전통 상차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수시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저쪽 상 귀퉁이에 놓인 음식은 이쪽에서 맛보기 어려운 단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배려를 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무언가 새로워지려는 노력 속에 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어 얼마나 흐뭇하던지.
문화는 바로 씨앗과 같은 것이라 했다. 공동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도 여유로움과 촉촉한 인심이 배어 있었다. 부족하나마 사회는 이렇게 작은 부분부터 개선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문화라는 씨앗이 한국의 토양 위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긍정적인 눈으로 물기어린 서정적 가슴으로 한국인의 외형을 관찰해볼 작정이다. 적나라하게 현실을 직시함이 실존적이라는 주장이야 없을까마는 나의 고국에 대한 미련과 애착에 상흔을 입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조국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하게 인정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인정한다.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하고 있다고.
<
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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