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추모가 일상이 된 느낌이다. 지난 5일과 6일 루이지애나 주와 미네소타 주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을 필두로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일어난 백인 경찰 저격 사건, 니스 테러, 루이지애나 경찰 총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충격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 때마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하는 애도 성명을 유심히 경청했는데, 그의 애도 성명에는 그가 워낙 뛰어난 연설가라는 사실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의 애도 장면 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지난 해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의 흑인교회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는 30분 남짓 추모 연설을 하다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첫 소절이었다.
그는 이날 장례식의 주인공인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기리는 추모사에서 은총의 기독교적인 의미를 짚으면서 인종 갈등과 반목을 넘어선 화합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다른 희생자들 8명의 이름도 차례로 부르며 같은 말로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당시 나는 이 장면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세월호와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렸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무엇이든(물론 철저한 조사와 진상 규명은 필수겠지만), 일단은 대통령이 참척의 고통을 당한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보듬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간 박대통령이 보여준 일련의 불통 행적들을 바라보면서 “기대를 접자”고 마음먹었었지만, 얼마 전 발생한 구의역 김 군 사고를 보면서 어리석게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더랬다. 왜냐하면 열아홉 소년 김 군의 죽음은 한 개인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가 낳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경기도 군포의 또 다른 19살 김 군이 세상을 떠났고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실외 에어컨을 수리하던 하청업체의 직원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잇따랐지만, 대통령에게서는 한 마디의 인간적인 애도나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2주 후에 열린 국회 개원 연설에서는 오히려 파견법 등 노동 4법의 조속한 통과를 재차 주문했을 뿐이었다.
그 후 한국에서는 이른바 나향욱 교육부 전 정책기획관의 막말 파동이 일었다. 그의 막말 가운데 나를 가장 섬뜩하게 했던 것은 “구의역 김 군이 내 자식 같다고 하는 건 위선”이라는 말이었다. “출발 선상이 다르다”는 말도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솔직한 속내일까?” 싶어 가슴 한 편이 서늘해졌다.
결국 파동을 일으킨 주인공은 파면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국민들이 입은 내상과 분노는 그의 파면 정도로 무마되기에는 너무 깊고 큰 것 같다. 여건만 된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던 직장 동료는 최근 한국에 있는 친정 언니로부터 “다시 들어올 생각 하지마라, 여기 오면 개, 돼지 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씁쓸해 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도 당분간은 인간적인 대통령으로부터 진정성 어린 위로와 힘을 얻기는 힘들 것 같다. 지난 19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정식 선출됐다. 25일부터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될 것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식을 가진 미국인들에게 개탄할 만한 일이라면, 민심은 당연히 힐러리에게 쏠리고 힐러리는 백악관 무혈입성을 꿈꾸어야 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게다가 힐러리는 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입장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힐러리가 똑똑하고 야심찬 여성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 오바마에게 열광했듯이 그녀에게 열광하지 않는다. 이는 그녀의 정치적 역량이나 식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녀에게 정치적 역량은 차고 넘친다. 그녀에게 2% 부족한 것은 진정성과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인 면모이다. 부디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이 편견에 찬 오해였음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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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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