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에 젊은 한인의사들이 너무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다. 얼마 전 주치의와 이야기 중 ‘요즘 젊은 의사들’이 화제가 되었고, 남편이 의사인 지인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몸 아픈 것만큼은 우리말로 해야 설명이 잘 되는데, 기존의 한인의사들이 은퇴하고 나면 이민1세 환자들은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 우리는 함께 걱정을 했다.
‘요즘 젊은 의사들’을 한인타운에서 보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삶에 대한 철학이 다른 때문이라고 나의 주치의와 지인은 지적했다. “근무는 9-5, 돈 덜 받아도 좋으니 그 시간 외에는 나를 찾지 말라”는 태도라고 했다. 2세 의사들 대부분이 그런 조건에 맞는 대형 의료기관들로 간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아니더라도 의사라면 환자 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1세 의사들과는 인생관이 다르다고 지인은 말했다.
“(남편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아침 일찍 입원 환자들을 돌아보고, 그다음 클리닉에 가서 하루 종일 환자들을 보고, 그리고 나면 다시 입원 환자들을 보러 가요. 의사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살아왔어요.”의사뿐이 아니다. 모든 직종의 1세들 삶이 비슷하다. 일이 곧 삶이고 일터가 삶의 중심인 생활이다. 반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일은 일일뿐이다. 일은 원하는 삶에 필요한 돈을 벌만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즐긴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역시 젊은 세대의 특징이다. 경제학과 교수 한분이 말했다.
“제자들이 직장을 구해야 할 때면 학교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같으면 새 직장 찾고 나서 먼저 직장에 사표를 낼 텐데 요즘 젊은이들은 달라요.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 싶으면 바로 사표부터 냅니다.”갤럽이 최근 발표한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일과 삶’ 조사결과도 이런 성향을 보여준다. 1980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이 세대(7,300만명)가 추구하는 것은 양질의 삶이다. 일도 삶도 의미와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보수가 좋은 직장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떠난다. 어디에 소속되어 매이는 걸 싫어하고, 기존 질서에 구속되는 걸 거부하며, 삶에 대해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것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갤럽은 결론지었다. 매이기 싫어 결혼도 미루는 이들은 부양할 가족이 없으니 그만큼 자유로운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낯선 나라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던 1세들에게 삶은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인내하는 것이었다. 당장의 즐거움만 찾는 ‘베짱이’를 비웃으며 ‘개미’로서의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 살고 은퇴 나이가 되면서 그 자부심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과연 잘 산건가” 싶어진다는 것이다.
한인들이 ‘베짱이’로 꼽는 대표적 민족은 멕시칸이다.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고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는 한인들이 보기에 그들은 한 푼 벌면 한 푼 쓰고, 두 푼 벌면 즐겁게 두 푼 쓰며 ‘대책 없는 삶’을 산다. 그렇게 수 십 년,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멕시코 어부’ 이야기가 있다. 미국인 투자은행가가 멕시코 바닷가에 갔다가 한 어부를 만났다. 작은 배로 커다란 참치 몇 마리 잡은 걸 보며 얼마나 오래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잠깐’이라고 했다. 그만하면 식구가 하루 살 돈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하루 종일 뭘 하느냐고 은행가가 물었다.
“늦잠 자고, 낚시 잠깐 하고, 아이들과 놀고 아내와 낮잠 자고, 저녁이면 마실 나가 술 한잔 마시고 친구들과 기타 치며 논다”고 했다. 은행가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럴 게 아니라 고기를 오래 잡아라, 그래서 돈을 모아 큰 배를 사라, 큰 배로 더 많은 고기를 잡아서 배를 여러 척 장만해라, 사업을 키워 유통업까지 겸하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어부가 물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15년에서 20년쯤. 그리고 나면요? 그럼 멋있게 은퇴를 하는 거지요. 은퇴해 바닷가에 살면서 늦잠도 자고, 낚시도 잠깐 하고, 아이들과 놀고 아내와 낮잠도 자고, 저녁이면 마실 나가 술 한잔 마시고 친구들과 기타 치며 놀고 …한인사회에는 너무 일만 하다 노년을 맞는 사람들이 많다.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은퇴하고도 삶을 즐길 줄을 모른다. 이제 쉬어볼까 하는 데 암 진단을 받는 케이스들도 있다. 자영업하면서 하루 10여 시간씩 수십년 일한 결과이다. 악착같이 돈 버느라 건강을 잃고, 건강 회복하느라 번 돈을 다 쓴다면 인생은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젊은 세대의 가치관, 타인종의 삶의 방식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우리 삶을 한번 돌아보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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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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