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와 부머랭 그리고 멜 깁슨의 나라 호주는 겨울인데도 날씨가 온화했다. 주위가 푸르러 심호흡이 나온다. 시드니 공항의 이민국 직원이 “굿다이 마이트”하며 인사를 했다. ‘음, 굿데이 메이트라는 말이구나’하고 속으로 웃었다. 지난주 폭스사의 공상과학 외계 스릴러 ‘에일리언’의 속편 ‘에일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와 선댄스 채널의 미스터리 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익: 차이나 걸’(Top of the Lake: China Girl)의 제2회 시즌 촬영세트 방문차 호주에 다녀왔다.
시드니는 세계 5대 미항 중의 하나라더니 정말 아름답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항 쪽으로 입술을 쑥 내민 것 같은 흰 조개껍질 모양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거의 초자연적으로 아름답고 장엄한데 누군가가 로비 천장의 시멘트 골격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시드니의 또 다른 명물인 시드니 항구 다리에 올라갔다. 오르기 전 알콜 호흡검사와 병력 체크를 하고 안전벨트를 맨 점프수트로 갈아입는 과정이 군 시절의 공수훈련을 생각나게 했다.
등산이라곤 서울 근교의 도봉산에 오른 것이 고작인 나로선 700칼로리를 소비하며 1,300여 계단을 올라 다리 꼭대기에 닿는다는 일이 보통 모험이 아니었다. 하늘이 손에 감촉되는 다리 정상에서 까마득히 아래서 추락을 유혹하는 바다와 눈앞에 탁 트인 항구와 도시의 고운 자태를 보자니 신의 천지창조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다리 꼭대기에 아바의 ‘댄싱 퀸’을 틀어놓고 춤을 추라고 발판까지 마련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내려오니 장하다고 수료증을 준다.
저녁에 요트를 타고 내항을 둘러봤다. 검은 구름 아래 금빛 황혼이 띠를 두른 시드니의 저녁은 마침 빛의 축제가 열려 빛과 색깔의 마술쇼의 무대 같다. 오페라하우스의 벽(사진)과 다리와 도시의 마천루 위로 총천연색 빛들이 해저 미생물들처럼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며 다닌다. 마치 태초의 생명의 잉태가 꿈틀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 밤의 오페라하우스를 가까이서 보니 아름다운 괴물 같다. 돌고래 같기도 하고 입 벌린 상어 같기도 하고 또 영화 ‘작은 공포상점’의 식인 식물 같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중국인들로 바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면서 ‘월칭 마틸다’를 흥얼거렸다. 이 노래는 호주 민요로 배낭을 등에 지고 걸어서 떠돌아다니는 원주민 일꾼의 얘기로 호주의 비공식국가다. 나는 이 노래를 고등학생 때 명동극장에서 본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반핵영화 ‘그날이 오면’에서 듣고 좋아하게 됐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가 나오는 쓸쓸하게 아름답고 심오한 작품으로 얼마 안 있어 핵진으로 사망할 호주인들이 냇가에서 “월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하면서 노래 부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에일리언: 커버넌트’(내년 8월 개봉)의 거대한 오픈세트는 숙소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 떨어진 옛 수원지에 있다. 감독 리들리 스캇은 별 연기도 필요 없는 같은 장면을 하루 종일 찍는다. 이러니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오를 수밖에. 스캇과 주연인 마이클 화스벤더를 만났다.
이보다 훨씬 흥미 있었던 것은 ‘탑 오브 더 레익: 차이나 걸’. 폭스 스튜디오 시사실에서 살인사건을 푸는 여형사 로빈(엘리자베스 모스)이 주인공인 시리즈의 일부 내용을 본 뒤 내용에서 아시안 소녀의 사체가 떠오른 본다이 비치로 갔다.
우리를 동반한 두 여자는 시리즈에서 창녀로 나오는 각기 말레이시아와 라오스 태생의 성전환한 사람들로 이들은 실제로 창녀들이다. 시리즈의 제작팀이 직접 사창가를 방문해 선발했다. 두 사람은 시드니에서 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나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고백했다.
시내로 돌아와 모스와 함께 시리즈 총제작자요 감독인 제인 캠피언(영화 ‘피아노’로 오스카 각본상)과 시리즈에 조연하는 호주 태생의 니콜 키드만을 인터뷰했다. 저녁에 키드만과 챔피언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 테이블로 찾아온 키드만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키드만은 남편인 컨트리 가수 키스 어반과 내슈빌에 살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내슈빌에서의삶은 어떻고 이제 컨트리의 전문가가 되었겠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키드만은 “아주 좋아요. 무슨 컨트리든지 다 알아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생긴 것은 차게 생겼는데 사람이 아주 겸손하고 상냥했다.
호주 영화계는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를 맞으며 ‘갈리폴리’ ‘행잉록의 피크닉’ ‘매드 맥스’ ‘데드 캄’ ‘브레이커 모란트’ ‘워커바웃’과 같은 걸작들을 내놓았다. 피터 위어, 조지 밀러, 질리안 암스트롱 및 브루스 베레스포드 등 감독과 베우 멜 깁슨, 니콜 키드만 샘 닐 및 주디 데이비스 등이 이 당시 배출된 영화인들이다.
*‘주말산책’은 필자의 블로그
에서 볼수 있습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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