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이 아름답다는 것을 스포츠를 보면서 느낀다. 경기에 완전히 몰입되어있는 선수의 몸은 시공을 초월한 듯한 어떤 완벽의 상태,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지난 31일 세계 서핑리그 피지 여자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한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몸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생각했다.
사실 그 선수의 몸은 완벽하지 않다. 하와이 출신 프로 서퍼인 베타니 해밀턴(26)은 13살 때 상어의 공격을 받아 왼쪽 팔을 잃었다. 서핑 좋아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걸음마 배우기 전부터 바다에서 살았던 그는 프로 서퍼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10대로 들어서면서 청소년 부문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런데 2003년 10월 이른 아침 친구 가족과 함께 서핑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서핑보드에 누워 왼쪽 팔을 바닷물 아래로 드리운 채 고요한 아침바다를 즐기고 있던 소녀를 상어가 덮쳤다. 왼쪽 어깨 바로 밑을 물어뜯어 팔과 서핑보드가 함께 떨어져 나갔다. 길이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상어였다. 팔이 잘려나간 부위에서 출혈이 너무 심해 몸속의 피를 60% 이상 잃으면서 생명이 위험했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지 13년, 외팔로 서핑을 계속한 해밀턴은 이번 피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불굴의 의지’라는 수식어와 함께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서핑보드와 한 몸이 되어 남태평양의 거대한 푸른 파도를 넘나드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하나가 된 황홀한 몰입의 경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생동감으로 전율하면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경지 - 생명체로서 온전히 살아있다는 것은 저런 상태로구나 생각했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믿기 어려운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공무원시험 준비 중이던 26세 청년이 광주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투신자살을 했는데, 마침 귀가하던 40세 공무원과 부딪쳐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 팔팔한 20대 청년이 취직시험 스트레스에 짓눌려 자기 생명을 끊은 것도 비극이지만, 성실한 공무원이 만삭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변을 당한 것은 뭐라 설명을 할 수 없는 비극이다. 집으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한 발짝만 빨랐어도, 그곳을 1초만 늦게 지나갔어도, 당하지 않았을 참변이었다.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의 불똥이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날아들어 생면부지 한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다. 사회 구성원 모두는 연결된 존재, 낯모르는 누군가의 불행이 언제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유기체적 관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청년의 자살 소식을 들으니 한국에 사는 친구의 아들이 떠올랐다. 친구의 아들은 공무원시험 준비로 청춘을 다 보냈다. 20대 중반에 5급 시험 준비를 시작해 몇 번 실패하자 7급으로 낮췄지만 아직 합격하지 못했다. 시험공부 10년에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 한창 생명력 넘쳐야할 시기를 햇빛도 들지 않는 고시원 방구석에서 썩혔다. 그 내면이 온전할까 싶다.
한국에서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공시 준비생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무원이 돼야 먹고 산다는 생각에 적성, 꿈 상관없이 우르르 몰려들어 몇 년씩 젊음을 저당 잡히는 것은 더 이상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문제이다. 가치 전도의 문제이다.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당대의 가치 전도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 두 도둑의 비유를 말했다. 한밤중에 도둑들이 보석상 안에 몰래 들어갔다. 이들은 물건은 훔치지 않고 가격표만 바꿔 놓았다. 귀한 보석들에 싼 가격표, 싸구려 보석들에 비싼 가격표를 붙였다. 그런데 이후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격표만 보고 가치 없는 것을 비싸게 사고, 가치 있는 것을 싸구려로 거래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가격표’가 뒤바뀌었다. 기쁨, 행복, 의미 같은 본래적 가치가 아니라 돈, 명예, 권력 같은 도구적 가치를 기준으로 성공의 가격표가 매겨져 있다. 연봉이 성공의 기준이 되니 고소득 직업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그 앞에서 수많은 청춘이 시들어간다.
팔 하나가 없어도 생명체로서의 기쁨을 만끽하는 삶이 있고, 건강한 몸을 갖고도 생명력 한번 발산하지 못하는 삶이 있다. ‘가격표’에 의심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즐거움과 보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렇게 성공의 가격표를 다시 단다면 세상은 훨씬 살만해 질 것이다.
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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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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