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독의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를 찾아간 날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헤세의 섬세한 언어들과 아름다운 시어들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뮌헨에서 울름과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칼프를 향해 달리는 기차의 창밖을 내다보니 신록이 무성하다. 한스 기벤라트가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타 내다본 창밖에도 신록은 저렇게 냄새를 풍기며 푸르렀을 것이다. 독일을 잘 아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우리 두 부부가 지난 5월 중순 2주간 독일을 다녀왔다. 독일을 아래서 위로 그리고 좌우로 돌면서 헤세 등 작가와 바그너를 비롯한 음악가들의 고향과 집을 둘러보았다.
나는 헤세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읽은 뒤로 나는 지금까지 헤세를 하나의 이상처럼 여기고 있다. 나로선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어서 마치 헤세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구름을 동경하듯이 그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다. 칼프로 가는 기차는 마치 내 고향으로 가는 기차 같았다. 생전 처음 찾아가는 내 문학의 고향을 향해 달리는 기차의 규칙적인 바퀴소리와 진동이 나의 기대와 의문과 흥분을 거의 불안하리만치 쿡쿡 찔러댔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늘 내 만성 통증이기도한 영육 간의 갈등에 시달리면서 그들의 숭고한 결합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헤세 자신이 개인적으로 결함과 문제가 적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의 둘은 이성과 감성이며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하일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C를 나르치스로 나를 골트문트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헤세는 자연의 문인인데 나 같은 도시인으로서는 그의 자연 또한 막연한 이상향과도 같다.
헤세의 글은 토마스 만도 말했듯이 산문도 시다. 섬섬옥수로 그린 세밀화처럼 자세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깨달을 것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화가이기도 했던 그가 자유롭게 그린 풍경화처럼 너그럽다. 단어 하나 하나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의 글은 심오하고 아름답다.
비가 오는 칼프의 작은 역에 내려 헤세도 말했듯이 자그마한 마을을 걷다가 친절한 동네사람의 소개로 점심을 먹으러 17세기에 지었다는 뢰슬레 호텔의 식당엘 들렀다. 영어를 나보다 잘하는 자그마한 주인아주머니 키어스텐이 남편 칼 바이델릭과 6대째 경영하는 호텔 식당에 헤세도 들렀었다고 들려준다. 요리접시에도 헤세의 사진과 글이 박혀 있다.
마을의 중심인 마르크트광장을 둘러싸고 헤세의 아담한 목조생가(사진 왼쪽서 두 번째)와 기념관 그리고 교회와 시청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년 한스와 헤세가 이 광장과 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자신들의 이상을 가꾸었겠지. 헤세기념관의 실물 크기 사진 속 헤세의 얼굴이 엄격하고 차갑다. 진열장에 한국어로 번역된 ‘데미안’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페터 카멘진트’와 ‘크눌프’의 초판과 그가 사용한 타자기도 있다. C가 독어판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사줬다.
한스가 멱을 감고 낚시를 하던 강 위로 놓인 니콜라우스 다리 중간에 나이 먹은 헤세의 동상을 보니 산 헤세 보듯이 반갑다. 어린 헤세를 세워 놓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칼프소요는 내게 마치 갑자기 받은 선물처럼 벅차게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차라리 그리움이 현실보다 고운지도 모른다. 칼프를 떠나는데 아쉬움이 발목을 잡는다. 언제 다시 찾아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잡아 추슬렀다.
하이델베르크와 쾰른과 본을 거쳐 북독 뤼벡에 오니 매우 춥다. 바닷바람이 독일 병정처럼 매섭다. 독일로 떠나기 전 친구가 유튜브로 보낸 하이네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인 ‘임 분더쉐네 모나트 마이’(화사하게 아름다운 5월에)라고 노래하기엔 너무 춥다.
한자동맹의 본산인 뤼벡은 작가 토마스 만의 고향이요 귄터 그라스의 집이 있는 곳이다. 젊은 바흐가 작곡가요 오르가니스트인 디트릭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아른슈타트로부터 장장 250마일을 걸어 찾아왔다는 세인트 메리교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는 참 교회와 성당도 많다. 우리가 매일 먹다시피 한 소시지와 맥주만큼이나 많다.
토마스 만과 그의 형으로 역시 작가인 하인리히가 태어나고 자란 백색 건물은 이들의 기념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인 ‘붓덴부르크 가족’이 살았던 집처럼 대가족의 훈기가 느껴졌다. 이 대하소설은 거상이었던 만 가족을 모델로 한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걸작이다. 튼튼한 문체와 방대하고 대담한 서술방식 그리고 자세한 인물과 사물 묘사로 꽉 짜여진 작품이다. 헤세와 만은 모두 노벨상을 탔다. 만의 집에 들르기 전 역시 노벨상을 탄 ‘양철북’의 작가 그라스의 집에서 그의 자서전 ‘양파껍질을 벗기며’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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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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