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왼손을 놓는 것이 성경이다. ‘검을 쓰는 사람은 검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 성경에 대통령이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나라에서 툭하면 대형 총기 살상사건이 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미국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성경과 총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나라다. 초기 미 서부개척자들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면서 총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가차 없이 살육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 총 다음으로는 위스키로 인디언들을 주정뱅이로 만들어놓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인디언 거주지역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가 돼서 미국인들의 총기소지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고 미국인들의 총기숭배는 물신숭배나 다를 바 없어 집집마다 총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공직 선거에 나선 어느 후보가 총기규제를 거론했다가는 막강한 미총기협회(NRA)의 미움을 사 낙선하기가 십상이다.
총은 있으면 쓰게 마련으로 미국에서는 버지니아텍이나 샌디 훅사건 같은 대규모 총기 살상사건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초 강력한 총기규제 법안 마련에 주저하는 의회를 보다 못해 총기규제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이것은 별 힘이 없는 조치다. 집집마다 수저 갖고 있듯이 총을 보유하고 있고 또 장난감 가게에서 딱총 사듯이 총을 살 수 있으니 총기에 의한 대형 참사가 빈발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최근 미시시피주에서는 주지사가 교회에 총을 소지하고 들어가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한 법안에 서명했다. 예배를 보는 성소에서 인명을 살상하는 총을 소지하도록 허락함으로써 마침내 미 건국의 초석인 총과 성경이 2위1일체가 된 것이다. 이야말로 가히 희극적이라고 하겠다. 또 텍사스주에서는 대학교에 총을 갖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 법안이 통과됐다. 이제 예배 보다가 또 공부하다가 수틀리면 총을 쏘게 됐다.
미 서부개척에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이 레버로 작동되는 연발 라이플 윈체스터다. 그래서 이 총은 ‘서부를 쟁취한 총’으로 불리며 미국을 상징하는 무기로 취급받고 있다. 윈체스터는 미 서부사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다 사용했다.
전설적 열차강도 제시 제임스와 말년에 콤비를 이뤄 미국을 돌며 ‘와일드 웨스트쇼’를 공연한 서부개척자 버필로 빌 코디와 톰보이 애니 오클리 그리고 커스터 장군의 미 기병대를 몰살한 수족 인디언의 용감무쌍한 추장 시팅 불 등이 다 이 총을 썼다. 많은 웨스턴에 나온 존 웨인이 들고 다니던 라이플도 윈체스터다.
웨인과 딘 마틴이 나온 웨스턴 ‘리오 브라보’에서 베이비 페이스로 나온 가수 릭키 넬슨은 라이플을 이렇게 찬미하며 노래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소떼들은 냇가로 내려가네/개똥지빠귀가 둥지에 몸을 풀면 카우보이가 꿈을 꿀 때라네/진홍빛으로 물드는 계곡이 내가 있을 곳이라네/내 좋은 세 친구들인 내 라이플과 말과 그리고 나와 함께.’
윈체스터가 영화의 주제로 사용되면서 미국인들의 총에 대한 집착을 묘사한 명작이 앤소니 맨이 감독하고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사납고 진지한 심리 웨스턴 ‘윈체스터 ’73’다. 스튜어트가 캔사스주 다지시티의 미 독립기념일 축제 사격시합에서 1등 상품으로 탄 윈체스터를 라이벌로부터 강탈당한 뒤 총을 찾기 위해 광적이다시피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면서 폭력적인 액션이 일어난다.
스튜어트의 손을 떠난 윈체스터는 위스키 행상과 젊은 시팅 불(록 허드슨이 인디언으로 나온다)을 비롯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가는데 총을 잠시 소유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라이플을 보물단지처럼 여기며 마치 미녀를 보듯 찬미하고 감탄한다.
총에 관한 영화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피스톨이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고 또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아서 펜이 감독한 미학적 폭력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이다. 미 경제공황 시대 연인 은행연쇄강도 바니 파커(페이 더나웨이)와 클라이드 배로(워렌 베이티)의 이야기로 이들이 쓰는 피스톨은 바니의 욕정의 대상인 클라이드의 성기를 상징한다. 둘은 이 무기에 대한 사랑에 자극을 받아 로맨스에도 열기가 달아오른다.
피스톨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면서 아울러 강한 애정과 집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범죄영화가 허무하고 폭력의 카니벌과도 같은 ‘건 크레이지’(사진)다. 젊은 부부강도 바트(존 달)와 애니(페기 커민스)의 강도질과 살인행각을 그린 흥미진진한 필름 느와르다. 애니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6연발 피스톨을 든 채 호스로 자동차 연료통에 개스를 넣는 장면은 남녀 간의 섹스를 묘사한 기름 냄새 나는 러브신이다.
집집마다 총이 있으니 성질나면 쓰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대형 총기살상에 대한 유감 표명이 마치 주례행사처럼 되었다고 자조했겠는가. 총 차고 예배 보는 미국은 확실히 건 크레이지의 나라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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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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