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꽃 터널이 이루어지는 달이다. 나는 벚꽃이 만발한 꽃 동굴을 걷곤 한다. 섬뜩하리만큼 신선한 꽃기운에 압도당하면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눌러가며 주체할 수 없는 봄의 정기에 취하여 유유히 걷는다. 꿈길이다.
4월은 생명의 등불이 켜지는 달이라는데 어쩌면 이 꽃의 그늘이 생명의 등불일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고 있다. 그러나 4월은 꼭 그렇게 달큼한 달만은 아닌 것 같다.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고, 바로 2년 전에는 고국의 온 국민이 함께 통곡해야 할 일이 발생했다.
함민복 시인은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이라고 노래했다. 목 놓아 울면서도 치열한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기억을 우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세월호는 신경증적인 이 시대의 증거물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인간의 역사는 쉴 새 없이 엮어지면서 우리의 내장을 후비는 무서운 일들이 쌓여가고 있으니 이젠 아름다운 달로만 불러 줄 수는 없는 달이 되고 말았다. 햇빛이 밝을수록 가슴속 아픈 자리는 더 저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세월호와 연결 지어진 4월의 비극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바쁜 현대를 숨 가쁘게 살아가느라 허둥대지만, 때로는 여유 있는 마음자리를 마련해 보자. 소풍 날 아침 해를 반기듯 4월의 따뜻한 햇덩이를 안어보자.
어두운 4월의 이야기는 잠깐 제쳐놓고 꽃 같이 예쁜 꿈을 좇아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 내 앞에 어른거리는 나침판을 따라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을 해 보아야 한다. 4월은 낮이 점점 길어진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매력 있는 달이다. 멀리 두고 계획했던 일,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일, 가고 싶었던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마음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일들을 위하여 과감해 보자.
너무 춥거나 덥지 않아서 나가기 거북스럽다는 느낌이 없어서 좋다. 만일 4월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달 5월이 있으니 조급하지 말자. 또 하나의 아름다운 달, 서른한 개의 날들이 ‘5월’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비축되어 있으니 마음이 부유해진다. 이렇게 좋은 날들이 나에게 무상으로 온다. 분에 넘친다.
4월은 말한다. “자연이 쉽게 가져다 준 계절이지만 형설의 공이 이루어준 은혜로 생각하기를 원한다” 고. “그렇다” 나는 그렇게 4월을 맞이하고 알차게 4월을 엮어가고 싶다.
눈처럼 흩날리는 낙화의 자태에서도 내면에 도사린 소멸의 그늘이 나를 쓸쓸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성과 소멸의 원리인 것을, 낙화가 있어야 열매가 있다면 낙화의 존재를 파랗게 돋는 새 싹쯤으로 보아야 한다. 격정의 젊은 날, 우리의 기상은 어떠했던가. 삶이란 잃고 얻는 일의 연속이 아닌가, 그간에 얻었던 많은 것을 기억해 보라.
아직도 저물지 않은 이름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나의 기억 주머니에 잡힌 주름사이에 낀 옛 이름이 아물거리며 생각나지 않을 때는 묵상하라. 그리고 그 즐거웠던 때를 추억해보자.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하여 나는 늙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 산다고만 생각지는 말자. 그 자리에 성숙함이 들어 선 것이다. 우리는 앞에 막아선 절벽도 넘었고 삭막한 황야도 가로질렀으며 성난 파도도 헤치지 않았던가.
가슴 후비는 사연이 있는 4월을 밝은 이미지로 채워보자. 진솔한 묵상으로 이토록 빛 밝은 4월을 아파해야하는 의미를 알자.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고 메뚜기는 내년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내일도 포기해서는 안 되며 내년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것은 충분히 자랑되어져야 하고 칭찬받고 사랑 받아져야 한다.
우리는 화해와 조화가 얽힌 질서 속에서 살아야 한다. 4월을 예찬하고 나니 우리의 죄가 더욱 큰 것 같아서 가슴이 무겁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젊은 영혼들에게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하며 명복을 빕니다.”
<
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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