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크 택스’ 소매업계에 만연
▶ “고가 책정은 여성 심리 이용한 상술”
의식 있는 여성들이라면 샤핑에 앞서 ‘성적 불평등’(gender inequality)에 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최근에 나온 2건의 연구 보고서는 ‘유리천장’과 관련된 성적 불평등 문제가 기업뿐 아니라 소매업계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성별을 반영한 불공정한 가격정책에 따라 여성용 제품이나 서비스에 추가로 청구되는 비용을 일컫는 ‘핑크 택스’(pink tax)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한 거의 모든 상품거래에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된 한 연구 보고서는 직장에 만연된 남녀불평등이 온라인 소매업계로 성공적으로 이동했다고 선언했다.
이베이에 여성 셀러들이 올린 상품은 남성들이 판매하는 동일 아이템에 비해 낮은 가격에 팔린다. 셀러들의 평판이 똑같은 경우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최근 뉴욕시 소비자보호위원회(DCA)는 800여종의 소비자제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통해 ‘여성용’이라는 딱지를 달고 시장에 나온 상품들은 같은 종류의 남성브랜드에 비해 절반가량이 더 비싼 가격에 팔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여성이 샤핑을 할 때 유사제품, 심지어 동일제품을 남성보다 비싼 값을 치루고 구매하는 경우가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백화점을 둘러보면 핑크 택스의 실증적 사례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여성 브랜드상품이 남성용으로 만들어져 마켓에 나오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상거래사이트인 이베이에 물건을 올린 여성 셀러들은 남성이 띄운 똑같은 신상품의 거래가격 1달러당 평균 80센트를 받는데 그친다.
남성 셀러가 100달러를 받는 상품을 여성 셀러가 판다면 80달러 밖에 받지 못하는 셈이다.
뉴욕시 소비자보호위원회의 커미셔너를 역임한 줄리아 메닌은 “우리가 기억해야하만 할 사실은 남녀사이에 현저한 임금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점”이라며 “평균적으로 전국의 여성 근로자는 남성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임금의 77%를 받는 게 고작이다”고 지적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성이 100달러를 받을 때 여성은 77달러를 받는 셈이다.
이처럼 여성은 동일직종의 일을 한다 해도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같은 종류의 상품을 구입할 때에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일터에서 소매업계로 이동하며 확산된 성적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여성들은 이중의 불이익을 당한다는 얘기다.
메닌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발표된 뉴욕시 소비자보호위원회의 보고서는 로컬 상품가격을 예로 들었지만 연구원들이 표본으로 사용한 상품들은 모두 전국적 체인망을 지닌 소매업소에서 구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단지 뉴욕시에 국한된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뉴욕시 소매업계에서 목격한 성적 불평등은 미국 전역의 도시에도 존재하며, 동일한 패턴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마케팅과 브랜딩 전문가인 마이크 잭슨은 “만약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이를 문제 삼는다면 궁극적으로 사회적 반발기류가 조성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잭슨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좋아하는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으려든다는 사실을 소매업계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로 비슷한 상품이라 하더라도 남성용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알고 보면 여성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문제가 커져 사회적 이슈로 발전하기 전에 소매업계가 먼저 핑크 택스의 부당성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공개선언을 할 경우 잠복한 위기를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적 불평등을 다룬 보고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가 여러 차례 나왔고 그때마다 비슷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소매업계와 제조업계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한 예로 2010년 ‘컨수머 리포츠’는 “성의 전투에서 남성이 승리했다”고 선언한 기사를 게재했다. “적어도 물건을 구입할 때 여성보다 더 적은 돈을 낸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내용이었다. .
이에 앞서 1994년 캘리포니아가 발간한 보고서는 동일한 서비스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연 1,351달러를 더 낸다며 이를 ‘젠더 택스’(gender tax)로 명명했다.
1992년 ‘성별에 따른 바가지’라는 타이틀로 뉴욕시가 작성한 보고서도 다양한 소매업종에서 여성이 가격차별을 당한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당시 보고서는 중고차딜러와 드라이클리너, 세탁업체와 헤어살롱을 포함한 거의 전 업소와 매장들이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메닌은 “우리가 샘플로 삼은 800종의 상품을 만들어내고 판매하는 각 제조사와 소매업체의 최고경영자에게 젠더 택스 관행을 시정해 가격 공정성을 확보해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잭슨도 “여성들은 소매업계로 확산된 성적 불평등이라는 이슈를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소매업계는 각종 단체와 기관들의 거듭된 젠더 택스 시정 촉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메닌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편지를 보낸 최고경영자들 가운데 몇 명이나 반응을 보였느냐는 질문에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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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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