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다보니까 요즘 우리 친구나 이웃들이 심심찮게 죽음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무엇보다 죽어서 땅에 묻히느냐 아니면 화장을 하는 게 나을까 하는 화제가 등장하곤 한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장지를 사둔 경우가 있는데 내 가까운 친구 한명도 약 십여년 전에 묘지와 관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사둔 묘지는 경관이 뛰어나고 관도 마호가니로 만들어서 그 가격이 7,000달러를 넘는다고 내게 자랑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나이가 들면서 차차 변하게 된다는데 있다. 그 친구도 이제는 마음이 변해서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보다 화장을 하는 쪽으로 바꾸었다. 자신이 사두었던 묘지도 팔겠다고 내놓았다.
나도 젊어서는 죽으면 화장을 한다는 것이 끔찍이 무섭고 두려웠다. 한번 죽는 것도 억울한데 왜 또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두 번 죽어야 하느냐가 그때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이제 칠십대 중반을 넘기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죽어서 차디찬 땅바닥에 묻히는 것이나 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나 결국은 다 그게 그거지 뭐! 결국은 모두 흙으로 돌아갈 텐데 말이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약 2,000달러 정도만 내면 장례 회사 사람들이 와서 시신을 거두어다 화장을 시키고 재가 된 뼈까지 깨끗하게 처리를 해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계약을 한 내 동창들이 많다.
죽으면 그만인데 경치가 좋으면 무얼 하고 관이 비싸다고 썩지 않을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이 어떻게 자랑이 될 수 있는지 나는 오래전 그 얘기를 친구에게서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약 삼년 전에 먼저 불귀의 객으로 떠났는데, 제법 많은 그녀의 친구나 이웃들이 죽어서 같은 곳에 묻힌 탓에 그녀의 이웃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죽어서도 가까운 곳에 지인들이 묻혀서 정말 덜 외로울까? 위안이 될까? 나는 어쩐지 그 질긴 인연들이 조금은 지겨울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죽어서 화장을 하게 되면 남은 자식들이 처음 얼마간은 찾아갈 장지가 없어 허전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또 가끔 자식들이 찾아와 조금은 슬퍼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장지를 만든다는 것도 넌센스다. 자식들이 얼마나 자주 부모의 장지를 찾아갈까. 결국 길어야 100년이면 모든 묘지들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얼마만큼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억할까? 나는 그저 내 손자 손녀들이 우리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해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어른으로 자랐을 때 입가에 미소를 지을 만큼 따뜻한 추억만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하면 모든 인생사가 허무하기만 하다. 바람이 부는 것, 바람에 구름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 어제 밤 뜰에 떨어진 낙엽들이 오늘 아침 발아래 굴러다니는 것, 기러기들이 떼 지어 북녘으로 사라지는 것,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가슴이 시려지는 것, 이 모든 일상사가 오늘은 어쩐지 으스스하고 춥게 느껴진다.
우리가 아무리 죽어서 갈 곳이 있다고 굳게 믿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역시 죽음은 외로운 길이다. “나는 준비가 되어있어. 아무 때나 하나님이 부르시면 네! 하고 갈 준비가 말이야.” 이렇게 당당히 말하는 친구들도 정말 그럴까? 오늘 아침 친구의 남편이 대장 검사를 했는데 좀 의심스러운 곳이 있어서 의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괜찮으세요?” 내가 물으니까 “그럼요, 살만큼 살았는데요” 라고 말하며 그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해도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생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누가 먼저 가고 누가 남을지 우리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위에 한 식구 같은 많은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웃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헬프 미!” 하고 외치면 “오케이!”하며 달려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작은 위로가 된다. 나는 기왕이면 죽어서보다 살아있을 때 좋은 이웃으로 남고 싶다. 이 세상은 허무하지만 정은, 사랑은 남아서 우리들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옥교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