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LA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는 희비 쌍곡선을 이루는 두 편의 음악극이 공연되고 있다. 둘 다 한 시간 남짓한 오페라로 영화로 말하자면 2본 동시상영이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드라마로 음악과 내용이 재미있고 극적인 두 오페라는 모두 영화감독인 우디 알렌이 제작한 ‘지안니 스키키’(Gianni Schicchi)와 프랑코 제피렐리(‘로미오와 줄리엣’)가 제작한 ‘팔리아치’(Pagliacci·사진)로 수년 전에 공연한 것의 재공연이다.
두 오페라는 삼척동자도 아는 소프라노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테너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로 유명한데 이 번 공연은 노래나 연주나 다 고만고만한 것이지만 부담 없이 즐겁게 한두어 시간 보낼 수는 있다.
LA 오페라의 총감독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4)가 처음에 공연되는 푸치니의 희극 ‘지안니 스키키’에서는 무대에 올라 바리톤으로 목소리를 낮춰 스키키 역을 노래하고 다음 작품인 레온카발로의 처연한 비극 ‘팔리아치’에서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바쁘다 바빠!‘지안니 스키키’는 인간의 탐욕을 야유한 소극이다. 오페라는 시작되기 전 경쾌한 ‘후니쿨리 후니쿨라’에 맞춰 무대 위에 마련된 스크린에 마치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처럼 오페라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소개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의 내용을 따 만든 ‘지안니 스키키’는 사망한 플로렌스의 부자 부오조 도나티의 유산을 놓고 일가친척이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난리법석을 떠는 얘기다. 그런데 오페라를 보면서 공연시간 52분간 내내 침대 위와 집 문 밖에서 부동자세로 꼼짝도 않고 있는 부오조역의 배우의 인내심에 감복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눈에 띄는 배우(?)가 부오조의 유산 중 하나인 당나귀로 이 당나귀는 훈련을 잘 받아 경쾌한 음악과 노래의 음들 속에서도 아주 침착한 연기를 했다. LA 매스터코랄의 총감독인 그랜트 거숀의 지휘에 맞춰 오케스트라는 매우 속도 빠른 음악을 탄력 있게 연주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주인공으로 날사기꾼이자 ‘잭 오브 올 트레이즈’인 지안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가 부르는 서정적 매력을 지닌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감칠 맛 나고 마음을 아이스크림 녹듯이 만들어주는 노래인데 라우레타 역의 아드리아드네 척만이 달콤하니 불렀다. 이 아리아는 역시 둘 다 푸치니의 오페라인 ‘나비부인’과 ‘라 보엠’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과 ‘내 이름은 미미’와 함께 아름답기 짝이 없는 소프라노 아리아로 꼽히고 있다.
이 날 오페라 공연서 이색적이었던 것은 수십년간 테너로 노래 부른 도밍고가 바리톤으로 스키키 역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 도밍고는 바리톤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가 테너로 바꿨는데 요즘 들어 나이가 먹으면서 바리톤으로도 노래 부르고 있다. 이 날 그의 노래는 특별히 잘 날 것도 그렇다고 못 날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날 노래 부른 가수들의 전반적인 수준도 그저 무난한 편으로 ‘야 정말 잘 부른다’라는 감동은 받지 못했다.
아리아보다는 오히려 앙상블이 듣기 좋았는데 도밍고는 지난 3월 뉴욕 메트에서 공연한 베르디의 ‘에르나니’에서도 바리톤으로 노래 불렀다가 비평가들의 부정적 평을 들은 바 있다. 다분히 반 가톨릭적 의미를 지닌 ‘지안니 스키키’에는 한국인 바리톤 윤기훈이 공증인으로 나온다.
이어 공연된 ‘팔리아치’는 어릿광대라는 뜻으로 이 오페라는 유랑극단의 단원들을 둘러싼 사랑과 욕정과 배신 그리고 살인이 뒤엉킨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격한 드라마다. 먼저 극단의 조연급 광대로 간교한 토니오가 커튼을 젖히고 무대에 나와 “이 오페라는 실화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시작되는 ‘팔리아치’는 한 여자를 둘러싸고 세 남자가 사랑과 욕망의 3중주를 연주하다 칼부림으로 끝나는 치정극으로 옛날에 한국에서 보던 가설극장의 연극 같은 내용이다.
유랑극단의 단장이자 광대인 카니오의 부정한 아내로 역시 배우인 네다를 탐하는 등에 혹이 난 이아고와도 같은 토니오와 네다의 정부 실비오의 삼각관계 얘기인데 도밍고가 매우 로맨틱하고 격정적인 음악을 탐스럽게 지휘했다.
이 오페라에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카니오가 아내의 부정을 알면서도 광대복을 입고 무대에 나서야 하는 신세를 탄식하는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이다. 카니오 역의 마르코 베르티가 무난하게 노래했는데 이 서정적 비감을 지닌 감정적으로 또 극적으로 통절한 노래는 테너 아리아 중 가장 처절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토스카’에서 총살당하기 직전의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도 이 노래의 아픔을 따라오지 못한다. 힘과 유연성을 고루 지녀야 하는 노래로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이 아리아는 특히 카루소의 것이 유명한데 그가 1902년에 취입한 음반은 사상 최초로 100만장이 팔렸다, 두 오페라 다 세트가 매우 정교하고 훌륭한데 이탈리아 풍경의 특징인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한국의 옛 풍경을 생각나게 만든다. 두 오페라는 오는 10월3일까지 공연된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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