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
한 행선지가 최근 대한민국으로 급커브를 튼 것일까.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대학가에 연어컵밥, 연어베이글, 연어샌드위치 등 연어가 주요 식재료로 들어간 음식들이 메뉴판을 점령했다. 이 정도로 연어를 먹어서는 성에 차지 않는 이들을 위해, 트렌드의 척도 가로수길에는 연어 전문 레스토랑에 연어 부페-그것도 무한리필!-까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삼겹살과 한우 등심, 참치만이 누리고 있던, 식재료 자체가 식당의 이름이자 개념이 되는 독보적 지위를 마침내 연어도 획득한 것이다. 연어의 이 지위상승은 여성들의 열광적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식감이 좋고, 건강과 미용에 효과가 좋은데다 또렷한 색감이 음식의 비주얼을 돋보이게 하는 게 여심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주황색 살점과 흰색의 마블링의 빚어내는 상큼한 대비.‘찍는 것이 곧 먹는 것”인 여성들의 공감각적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참치를 밀어내고 여심을 훔친 연어, 연어의 전성시대다.
■참치에서 연어로 권력이동
연어열풍은 최근 연어 수입량 추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연어 수입량은 2010년 9,400톤 수준이던 것이 지난해 2만5,000톤 이상으로 4년 사이 2.5배 넘게 늘어났다. 이에 맞춰 수입국도 노르웨이, 칠레 등 전통적 연어 산지에서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냉동연어가 전체 수입량의 60% 이상을 차지하긴 하지만, 소비 고급화 추세에 따라 신선연어의 수입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때 아삭한 식감에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세를 이뤘던 냉동연어보다는 생연어를 이용한 사시미나 덮밥류가 외식가에서는 주요 메뉴를 이룰 정도로 연어 입맛이 고급화했다.
연어의 수요 증가는 참치의 퇴조와 맞물려 있다. 무엇보다 참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참치가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로 중금속 축적 논란을 몰고 다니는 것과 대조적으로 연어는 오메가3 지방산과 항산화 효과의 건강한 이미지로 인해 ‘수퍼푸드’로 불리고 있는 것도 차이. 지방함유량이 낮으면서도 단백질은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꼽힌다. 특히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연어의 맛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한국인, 특히 한국 여성들의 입맛에 잘 맞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줄곧 일식당을 운영하다가 올 7월 연어전문점으로 변경, 개장한 ‘히메’의 송재원 사장은 “연어를 찾는 손님들이 하도 많아 아예 업종을 바꾸게 됐다”며 “지난해부터 시작된 연어 열풍이 올해 특히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확실히 참치에서 연어로 트렌드가 옮겨갔다”며 “점심엔 도시락이나 덮밥 등 식사를 판매하고 연어요리는 디너메뉴로 따로 만들었는데 점심, 저녁 모두 손님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메뉴로 변주 가능한 연어
연어는 회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는 요리법이 다양한 생선이다. 연어롤, 연어샌드위치, 연어덮밥, 연어샐러드, 연어스테이크 등 다양한 메뉴로 변주 가능한 것이 연어의 장점. 통연어살로 만든 연어 커틀렛 ‘연어카츠’도 있고, 스타게티면에 청경채, 숙주 등 각종 채소와 연어를 볶아낸 일본식 파스타 ‘연어야키’도 있다. 요즘은 두툼한 생연어를 밥 위에 듬뿍 올린 후 생양파와 일본간장 츠유소스를 얹어 먹는 일본식 연어덮밥 ‘사케동’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다. 가격은 1만원 안팎.
가로수길 연어 전문 레스토랑 ‘살몬바’에서는 우리가 흔히 고로케라고 부르는 크로켓 형식으로 연어를 다져 넣은 뒤 튀긴 연어 포자스키도 선보이고 있다. 리코타 치즈를 곁들인 훈제연어와 연어 사시미를 푸짐하게 한 접시에 내놓는 ‘연어 플레이트’는 가로수길 연어 전문점 미션베이의 대표적인 메뉴다. 가격은 3만5,000원.
북유럽 스타일의 연어메뉴들도 맛볼 수 있다. ‘오로라 샐몬 플래터’는 노르웨이 연어 중에서도 고급으로 꼽히는 오로라연어 생회와 참나무로 훈연한 훈제연어, 소금과 설탕, 북유럽 향신초인 딜을 넣어 스칸디나비아 방식으로 숙성시킨 그라브락스 연어를 한데 모은 모둠음식으로 쌜모네키친의 대표메뉴다. 작은 접시 기준으로 2만7,000원. ‘훈제연어 감자뢰스티’는 참나무로 훈연한 훈제연어에 스위스식 감자전인 뢰스티와 수란을 곁들인 북유럽식 요리로 1만9,000원이다. 토치로 겉만 살짝 익힌 연어 타다키,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연어회 카르파초, 연어 사시미, 연어 스테이크 등 각 레스토랑마다 끝없는 연어의 변주가 이어진다.
연어 매니아 임아름(24)씨는 “그동안 비싼 음식이라는 생각에 자주 찾지 못했는데 최근 연어 전문 식당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많이 낮아졌다”며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 식감에 먹으면 건강한 느낌이 들고 칼로리 부담도 낮아 더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도 부는 연어 바람
주머니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 타겟으로는 연어 컵밥과 연어 베이글이 핫한 메뉴다. 이화여대 앞 컵밥 노점 ‘아리랑’이 내놓은 네 종류의 컵밥 중 지난해 3월 출시한 연어컵밥이 가장 많이 팔린다. 아침에는 2,500원, 이후에는 3,300원에 팔리는 연어컵밥은 이전까지 랭킹 1위를 도맡았던 닭가슴살컵밥보다 두 배 가까이 판매량이 많다.
잘 구운 베이글에 신선한 양배추, 연어 슬라이스, 토마토나 바나나 슬라이스, 리코타 치즈를 차곡차곡 쌓아 만든 연어 베이글은 과채와 연어, 치즈의 조합이 일품인 데다 신선한 재료가 꽉 차 있어 반쪽만 먹어도 든든해 여대생들의 식사 대용으로 인기가 높다.
이화여대 국문과에 재학중인 정유진(23)씨는 “깔끔한 맛과 사르르 녹는 식감 때문에 원래 연어를 좋아했는데 학교 앞에서도 간편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연어 메뉴들이 많아졌다”며 “여성의 취향을 저격한 듯한 다양한 메뉴들 덕분에 요새 더 자주 연어를 먹게 됐다”고 말했다.
■무한리필 연어, 어디까지 먹어봤니
연어와 한판 결투를 붙어볼 작정이라면 무한리필 부페가 좋다. ‘연어한마리’ ‘베르사케’ ‘알래스카’ 등의 연어 부페들이 여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마다 속속 들어서고 있다. 생연어만 먹을 경우 1인당 1만3,900원에서 1만4,900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다. 다만 연어만 먹으면 많이 느끼하다는 것이 함정. 그래서 대부분의 부페가 ‘연어+문어’ ‘연어+광어’ 식의 베리에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걸어놓고도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내면에 반드시 인내심을 장착한 후 찾아가는 게 좋겠다.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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