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 [신세계푸드 제공]
2018년 초겨울의 일이었다. 이마트에서 개장한 레스케이프호텔의 갈라 디너(만찬 행사)에 참석했다. 내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레스케이프에 진출한 식음료 브랜드들이 다수 출동해 식음료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식사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홀에 등장했다. 초면이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호텔의 매니저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객들에게 인사를 하러 왔구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셰프를 비롯한 관계자가 홀을 돌며 인사를 하곤 한다. 호텔의 식음료 브랜드 대부분이 참석하는 만찬이었으니 매니저의 인사는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였다. 하지만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그는 돌며 인사를 하긴 했지만 자신과 안면이 있는 객들에게만 눈을 맞추고 곧 사라졌다. 안면이 없는 내 테이블에는 들르지 않았다.
그는 원래 블로거이자 일반 기업체의 직원으로 레스케이프호텔에 매니저로 전격 발탁돼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접객 및 요식업 경험이 없는 이였는데, 만약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매니저라면 어땠을까? 모 아니면 도였을 것이다. 홀 전체를 다 돌며 인사를 했거나 아니면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괴상하다면 괴상한 일이었지만 곱씹어 보니 또 그렇지도 않았다. 조잡한 여건과 식사에 격이 맞는, 조잡한 접객이었다. 무표정한 타일 외관과 상반된 소위 ‘벨 에포크'풍 인테리어, 대충 시공한 티가 잔뜩 나는 공간에서 적당히 흉내를 낸 프랑스 요리가 나왔다. 그렇다면 매니저도 접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이라야 궤가 맞는다.
■맥주, 버거… 브랜드 다변화가 독?이는 지난 10년, 혹은 그를 조금 웃도는 기간 동안 이마트가 보여준 행보의 상징적인 사례다. 그럴싸함 혹은 멋을 추종하지만 아귀가 맞지 않고 내실이 없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데블스도어'다. 2014년 미국 수제 맥주 전문점을 표방하며 출범한 데블스도어는 손님이 자리에 앉은 뒤 10분이 넘도록 찾아오지 않는 접객에 조악한 음식이 인상적이었다.
음식 속의 온갖 역사를 살펴보겠다고 연재를 시작한 ‘식사'가 이제 마지막인 100화를 맞았다. 그동안 온갖 음식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굴해 독자 여러분들께 차려드렸다. 마지막은 그에 걸맞게 ‘지금, 바로 여기'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로 식음료 기업으로서 이마트의 지난 10년의 역사다. 왜 하필 이마트냐고? 그나마 한국에서 식재료를 믿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대형마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음식평론가이기 이전에 밥 짓고 김치 담가 먹는 생활인으로서 세 대기업 브랜드 마트의 신선식품은 썩 좋지 않다. 하지만 그나마 이마트가 무난하고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처참하다. 여기에 나머지 식료품, 더 나아가 생활 편의시설 등까지 전부 아우르면 이마트가 가장 낫다. 1993년 서울 창동점으로 출범해 오랫동안 1등을 달려왔던 이유가 있다. 이마트는 오랫동안 신실했다.
하지만 지난 10년여 동안 이마트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무엇보다 주가의 하락이 말해주는데, 최근 반짝 반등하고 있음에도 7만6,000원대다. 7년 전인 2018년 3월 2일에는 31만2,0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기업가치가 무려 75% 감소했다. 이러한 기업가치 하락은 이마트가 변화를 주기 시작한 시기와 묘하게 맞물린다.
어느 날 갑자기 ‘창고형 양판점'을 추구한다며 선반을 천장까지 쌓아 올리고 물건도 채워 넣었다. 덕분에 실내공간이 전반적으로 어두워지면서 쾌적했던 쇼핑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와 맞물려 이마트가 브랜드 다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국내 첫 대형마트인 서울 이마트 창동점이 개장한 1993년 11월 무렵의 매장 내 청과 코너 모습. [이마트 제공]
■노브랜드, 피코크… 제 살 깎아먹기?이런 SSG 푸드마켓이 서울 목동에도 매장을 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15년, 10년짜리 임대 계약을 맺어 입점하고는 단 3년 만인 2018년 폐점했다. 오목교를 건너자마자 있는 입지가 나빴으며 비전을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공간도 좁았다. 한편 불과 1㎞ 남짓 떨어진, 좀 더 접근성이 좋은 입지에 현대백화점과 이마트가 있었다. 말하자면 ‘제 살 깎아 먹기'를 피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제 살 깎아 먹기라면 노브랜드와 피코크 또한 만만치 않다. 노브랜드는 정확하게 식품 전문 마트를 추종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마트에 비해 접근성이 좋은 입지에 중소 규모로 들어서 저가 상품으로 고객을 유도했다. 말하자면 소비자가 조악한 생필품을 사러 가는 김에 역시 조악한 식료품까지 사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모 브랜드인 이마트의 손해로 이어졌다.
한편 피코크는 신세계의 이미지를 깎아 먹었다. 이제 계열분리 작업이 한창인 신세계와 이마트는 머리 둘에 몸통은 하나인 기업이었다. 그런 가운데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분위기를 고수해왔던 신세계, 특히 식품관의 이미지는 피코크의 냉동식품이 입점되면서 하락했다. 본점은 좁은 공간에 무리해 냉장고를 들여 놓고 피코크를 입점시켜 쇼핑의 쾌적함도 상징성도 잃었다.
노브랜드 버거는 또 어떤가? 가성비로도 모자라 ‘갓성비'를 내세우며 2019년 출범했지만 돼지고기 혼합육을 쓴, 싼 가격만큼 희생시킨 맛으로 시장에 아직도 안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수제버거 브랜드 ‘자니로켓'으로 버거 시장에 도전했으나 프리미엄 전략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접고 시작한 사업치고는 실망스럽다. 그동안 경쟁기업은 쉐이크쉑이나 파이브가이즈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들여와 선전해왔다.
이처럼 눈에 띄는 실패들도 다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상당하다. 지난 10년 동안 이마트가 도전했다가 실패해 접은, 덜 알려진 식음료 사업으로 PK마켓, 제주소주, PK피코크가 있다. PK마켓은 고품질의 식료품 전문점으로 각을 잡았지만 2021년 스타필트 하남과 고양에서 폐점했다. 이마트 측에서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오프라인 매장 방문객 감소를 주 원인이라 내세웠지만 품질과 가격이 맞지 않아 실패했다.
제주소주는 2011년 제주도 향토기업으로 출발해 2014년 ‘올레 소주'로 인기를 끌다가 2016년 이마트에 매각됐다. 이마트는 2017년 올레 소주를 ‘푸른밤'으로 리뉴얼 출시했지만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그리고 비서울권의 지역 소주가 장악한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히지 못했다.

손님들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노브랜드 버거를 찾아 음식을 먹고 있다. [신세계푸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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