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병동 입원비 월 6천달러… 비축한 노후자금 금새 거덜
▶ 중산층에 메디케이드도 안돼
■ 치솟는 노인 장기치료 비용에 비명
나이가 들면서 애써 외면하려 드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여기에 대처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운수 사나워 알츠하이머 등 장기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마에 덜미를 잡히기라도 하면 집안 기둥이 뿌리째 뽑혀나간다. 너싱홈 등 의료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간호시설은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 - -
도리스 란즈만은 전문가들의 충고에 따라 ‘최악의 상황’에 나름대로 대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너싱홈 경비가 월 1만4,000달러를 넘어서면서 그녀의 계획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보험과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합쳐도 그녀가 입주한 맨해턴 소재 암스테르담 너싱홈의 경비를 대기엔 월 4,000달러가 모자랐다.
유일한 혈육인 딸 샤론 골드블럼은 “끔찍한 상황”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어머니가 비축해 둔 노후자금으론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고심 끝에 골드블럼은 어머니를 너싱홈에서 빼냈다.
65세 이상의 미국인 가운데 3분의 2는 골드블럼의 어머니처럼 장기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장기치료 비용은 서민들에겐 조달 불가능한 액수다.
보험사인 젠월스 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노인들의 장기치료 비용은 물가 상승률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년간 너싱홈의 독방에서 생활하는데 소요되는 경비의 중간 값은 연 9만1,000달러에 달한다. 반면 1년간 가정건강 도우미를 집으로 부르려면 연 4만5,760달러가 필요하다.
골드블럼은 지난 2년 동안 어머니를 너싱홈에 맡긴데 들어간 비용을 30만달러 이상으로 추산했다. 수용시설을 이용하는 장기치료는 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노인들을 보살피고 간호하는데 필요한 돈과 비축해둔 노후 자금 사이의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의 노인보험인 메디케어도 장기요양 경비는 커버하지 않는다. 결국 많은 노인 환자들은 저소득층 정부보험인 메디케이드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중산층에게 메디케이드는 ‘그림의 떡’이다. 메디케이드를 신청하기엔 차고 넘치는 반면 보통 3년 기한인 장기요양 치료를 받기엔 턱도 없이 모자라는 게 전형적 중산층에 속한 노인환자의 재정상태다.
종업원 베니핏연구소(EBRI)에 따르면 은퇴를 앞둔 55~64세의 미국인 가운데 60%는 은퇴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잔고의 중간 값은 10만4,000달러다. 여기에 다른 저축액과 소득을 합치면 은퇴 후 수십년을 너끈히 버틸 정도의 노후자금이 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처럼 아내나 자식의 장기적인 간호를 기대하기 힘든 질병에 걸리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부분 너싱홈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나면 노후자금이 바닥난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하기 수년 전에 장기케어 보험을 구입한다. 나이 들어 구입하려다간 보험사로부터 퇴짜를 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란즈만의 경우에서 보듯 보험도 완전한 해결책이 못 된다. 이 상황에서 모자라는 비용을 대기 위해 가장 먼저 날아가는 게 집이다.
일부는 비용이 조금 적게 드는 너싱홈으로 바꾸는 방법을 택한다.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너싱홈의 다인용실에서 지내는데 필요한 비용은 연 평균 1만1,000달러. 어덜트-패밀리 홈(adult-family home)의 방 값은 이보다 조금 더 싸다.
너싱홈 경비를 획기적으로 절약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워싱턴주 로페즈 아일랜드에 위치한 노인케어 매니저인 리즈 테일러는 “어느 정도의 케어를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집으로 찾아와 노인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을 구하려면 보통 시간당 20달러 이상을 주어야 한다. 비교적 저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루 24시간씩 장기치료를 받으려면 너싱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테일러는 “침대 밖으로 나오거나 한밤중에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라면 너싱홈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너싱홈 노조인 ‘아메리칸 헬스케어 어소시에이션’의 대변인 그레그 크리스튼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크게 늘어났지만 건강상태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며 “너싱홈에 입주하는 노인들이 각종 만성질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서비스 영역을 확대할 수밖에 없게 됐고, 그러다보니 장기 케어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놀라겠지만 하루 24시간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와 방값, 식대 등을 따져보면 이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을 괴롭히는 요인은 단지 비싼 비용만이 아니다.
로즐린 더피의 어머니 에블린 나파는 뇌졸중을 일으킨 후 애리조나를 떠나 딸이 살고 있는 시애틀 인근의 너싱홈인 스트레트 포드로 옮겨왔다. 둘은 새로운 너싱홈이 마음에 들었다. 시설도 좋았고 스태프들은 친절했다.
애리조나의 집을 처분한 돈으로 나파는 스트레트 포드에서 10년간 안락하게 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10년 후면 나파는 100세가 된다.
병원 디렉터는 더피에게 “설사 도중에 돈이 떨어져 메디케이드 신세를 진다 할지라도 병원에서 내보내지 않을 터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나파는 상태가 악화되자 독립병동에서 치매병동으로 방을 옮겼고 이때부터 ‘구멍 난 독에 물 붓기’식 자금투입이 시작됐다. 독립병동의 방값은 월 3,000달러인데 비해 치매병동의 입원실 비용은 월 6,000달러였다.
응급실 방문, 보청기 구입 등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소소한 경비가 쌓이면서 10년을 버티기에 족할 줄 알았던 비축자금은 단 2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더피는 어머니를 메디케이드에 가입시켰다. 스트레트 포드의 경영진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두달 만에 그녀는 병원 측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30일 내에 다른 너싱홈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더피는 스트레트 포드 경영진에 여러 통의 항의편지를 보내고 로컬 신문에 너싱홈 측의 횡포를 고발하는 기고문을 보냈다.
덕분에 나파는 2개월 간의 말미를 얻었고, 소셜워커의 도움을 받아 메디케이드를 받는 어덜트 패밀리 홈을 찾을 수 있었다.
나파는 너싱홈을 옮긴 후 6주 만에 숨졌다. 더피는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가 어머니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너싱홈 운영주의 약속은 서면으로 받아두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만 얻었을 뿐이다.
<김영경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