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며칠 전에 한국 영상자료원이 처음 내놓은 정창화 감독(사진)의 ‘노다지’(Bonanza·1961)를 보면서 “야 이건 할리웃영화 뺨치게 잘 만들었네”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야 말로 호랑이 담배 태우던 시절의 영화인데 속도 빠른 서술과 잽싼 편집 그리고 플래시백과 긴 세월의 얘기를 자막으로 처리하는 수법을 비롯해 박진한 액션 등이 장인의 솜씨 그대로였다.
황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주제인 이 영화는 정 감독 특유의 액션영화라는 장르 속에 가족 멜로드라마와 갱스터의 필름느와르 및 코미디에 로맨스까지 다양한 요소를 연금술사의 솜씨로 절묘하게 섞어 재미 만점이다. 내용과 연기와 기능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다.
캐스트도 보통 화려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스크린의 별이란 별은 다 떴는데 주연 김승호를 필두로 황해, 엄앵란, 허장강, 윤인자, 조미령, 박노식, 장동휘, 주선태, 전영선, 정애란, 김칠성, 장혁, 최성호, 남미리 및 장훈 등 당대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다 모였다. 음악은 한국 가요계의 거성 박춘석이 작곡했고 임권택이 조감독으로 정 감독을 도왔다.
금에 미쳐 산으로 들어간 운칠(김승호)과 달수(허장강)에 의해 버림받고 성장한 운칠의 딸로 갱단원인 영옥(엄앵란)과 달수의 아들인 갱스터 출신의 선원 동일(황해) 등과 함께 이들을 둘러싼 잡다한 군상들이 황금을 둘러싸고 서로들 감나무에 연줄 얽히듯 얽히면서 드라마와 액션이 일어난다.
이 영화의 황금에 대한 욕망은 존 휴스턴의 ‘시에라마드레의 황금’과 에릭 본 스트로하임의 ‘탐욕’을 연상시키는데 물질에 대한 욕심과 그것의 부작용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정 감독은 드라마와 액션을 적절한 순간에 맞춰 교체, 자칫하면 느슨해질 수도 있는 서술에 활기를 주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둘 다 콧수염을 한(김승호도 역시 콧수염) 구봉서와 김희갑이 날사기꾼들로 나와 웃기는 모습으로 이는 자칫 살벌해질 수도 있는 영화의 내용에 쉼표 구실을 하고 있다.
또 하나 파격적인 것은 운칠과 과거 자기를 버리고 돈 많은 사장에게 달아났으나 지금은 몰락해 바 마담이 된 운칠의 옛 애인 연옥(윤인자)이 오래간만에 재회, 나누는 러브신. 카메라가 둘의 키스 신을 클로스업으로 잡더니 이어 운칠의 등과 침대의 이불을 꽉 부여잡는 연옥의 손을 포착하면서 둘의 정염을 불사른다.
운칠이 연옥에게 배신당하고 홧김에 결혼한 아내로 나오는 조미령과 아역배우로 유명한 전영선 그리고 스크린의 터프 가이의 대명사였던 박노식과 장동휘의 얼굴을 보자니 옛날이 무척 그리워진다.
아기자기하고 다정하고 아이들 장난처럼 귀엽고 코믹하기까지 한 것이 마도로스 캡을 쓴 동일과 점퍼에 몸에 꼭 끼는 바지를 입은 영옥 간의 사랑의 줄다리기 놀음. 영옥이 “키가 작아서 흠이지만 멋쟁이야”라고 호감을 보이는 동일과 그가 말썽꾸러기 소녀 다루듯 하는 영옥과의 콤비가 묵직한 분위기의 영화를 아늑한 감정으로 채색하고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사금이 있는 계곡의 산에서 벌어지는 동일과 갱 두목 황돼지(박노식) 간의 주먹대결. 속도감 있고 박력 있는 편집이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대한민국의 국보급 배우였던 김승호의 무게 있으면서도 민감한 연기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모토인 정 감독이 또 다른 액션영화 ‘햇빛 쏟아지는 벌판’으로 흥행감독의 대열에 올라선 뒤 만든 그의 초기 걸작 중 하나다. 한국 영화계에 액션장르를 정립한 정 감독은 1960년대 한국서 활동하다가 1970년대 들어 홍콩의 명제작자 쇼브라더스의 초청으로 홍콩으로 건너가 많은 쿵푸영화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정 감독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것이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 이 영화는 미국에 수입돼 개봉 첫 주말 흥행 1위를 하는 쾌거를 이뤘다.
나는 현재 남가주 샌디에고에 거주하는 정 감독과 가끔 전화로 영화 얘기를 나누고 있다. 늘 현역임을 자처하는 정 감독의 변치 않는 영화에 대한 열정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개가 숙여진다. 정 감독과는 부산영화제에도 두 번이나 함께 참석해 감독의 소개로 한국 영화계의 원로들인 김기덕(젊은 김기덕이 아님)과 김수용 감독 등을 만나 영화 얘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정 감독은 ‘노다지’ 출반에 맞춰 내게 DVD와 함께 짤막한 소감을 보내왔다. ‘1950년대 암울했던 우리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리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욕망을 필름느와르로 속도감 있게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 봤다.’ 한국 영화계의 대부인 노익장 정창화 감독의 건투를 빈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