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세션 퇴출자들 복귀 국제경쟁력 저하 우려 심리적 상처 탓” 분석
▶ 예전같은 4%대 상승률... 완전고용·최대 생산능력 조건 충족돼도 힘들 듯
[실업률-봉급 어긋난 상관관계… 왜?]
미국 대도시의 실업률이 리세션 이전 수준으로 내려섰다. 지난 5월 미국 전체 평균 실업률은 직전 월인 4월의 5.4%보다 높지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 구멍이 뚫리기 이전인 2008년 5월의 5.4%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12월의 7.3%, 2009년 5월의 9.4%, 2010년 5월 9.6%, 2011년 5월의 9.0%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2012년~2014년의 5월 실업률은 각각 8.2%, 7.5%, 6.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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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이다.
그러나 실업률의 꾸준한 하락에도 불구하고 임금 성장은 느릿한 거북이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물론 경제학자들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정책 입안자들까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실업률이 떨어지면 노동시장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게 정상이다.
경제성장에 가속이 붙으면 노동인력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인건비가 자연스레 상승하기 때문이다.
현재 건축업과 요식업 부문에서는 고용증가와 이에 따른 임금 상승 기미가 포착되고 있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뚜렷한 신호가 읽히지 않는다.
월스트릿 저널(WSJ)이 최근 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경제가 완전고용 상태로 접근 중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봉급은 큰 상향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비농업부문 실업률이 리세션 이전 수준을 회복한 미 전국의 33개 광역도시를 대상으로 임금 성장률을 분석한 WSJ는 오하이오주 컬럼버스, 휴스턴, 오클라호마시티,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과 캔사스주 토페카를 등 전체의 3분의 2가 아직도 리세션 이전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WSJ는 주된 이유로 4가지를 꼽았다.
▲이 중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리세션으로 노동시장에서 사라졌던 인력을 집중적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침체기 이전의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리세션 당시 노동시장 퇴출인력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잠복 노동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잠복 노동력의 공급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임금 상승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임금 수준에 상관없이 취업만을 지상목표로 삼는 그룹이다.
▲임금을 인상할 경우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 해외 기업들과의 정면대결에서 승산이 없다는 고용주들의 우려도 국내 노동자들의 봉급 인상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이미 오래 전 끝난 리세션도 아물지 않는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고던은 임금과 인플레이션은 관성, 혹은 타성에 종속된다며 “이는 실업률이 5.5% 훨씬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저조한 생산성 향상도 기업들의 봉급인상을 어렵게 만든다.
임금 인상에 제한을 가하는 이 같은 장애요인들은 연방준비은행(Fed: 연준) 내부의 금리인상 논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실업률이 충분히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경기과열을 막고 여신을 제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 타겟인 봉급과 물가 상승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게 된다.
연방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5년 1분기 중 임금과 봉급은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하면서 2008년 이후 최대 성장폭을 기록했다.
월마트, 타겟, 맥도널드 등 미국의 일부 대기업들도 최근 몇 달 사이에 연이어 임금 인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가 최대 생산능력에 접근하고 완전고용이 이루어진다 해도 연간 임금 상승률은 리세션 이전의 최소 4%에 못 미치는 3%~3.5%에 그칠 전망이다.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로 인한 봉급 차이는 상당하다.
연간 10만달러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가구의 소득은 연 4% 임금 성장률을 적용할 경우 10년에 걸쳐 14만8,000달러까지 올라가는 반면 연 3%의 성장률을 대입할 경우 같은 기간 13만4,000달러까지 상승한다.
임금 정체는 미국의 중산층이 끌어안고 있는 장기적인 문제다.
인플레를 감안한 2013년 중산층 소득 중간 값은 5만1,939달러로 1988년의 5만1,514달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인플레를 감안한 블루칼러 근로자들의 봉급은 지난 25년간 고작 0.3%의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계속했다는 뜻이다.
정부의 제한된 예산도 임금 상승을 억누르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이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의 주도이자 주립 계열 대학의 본산이 자리한 컬럼버스는 정부 부문 일자리가 전체 인력의 16%를 담당한다.
퓨 채리터블 트러스츠의 분석에 따르면 이곳의 주세(state tax)는 최근 몇 년간 리세션 이전 수준을 회복됐지만 2014년 3분기의 징수액은 정점을 찍었던 2008년의 세수에 비해 10% 축소됐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근로자들은 2008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전면적 임금상승을 누리지 못했지만 지난 5월 체결된 계약에 따라 주 공무원 최대노조 회원들의 봉급은 향후 3년에 걸쳐 2.5% 인상된다. 2008년 중반의 마지막 임금 인상률인 3.5%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리세션의 기나 긴 그늘 아래서 생활하고 있는 다수의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은 어찌 보면 호사에 해당한다. 이들에겐 임금 인상보다 일자리를 찾는 게 급선무다.
오하이오주 마틴버그에 거주하는 개리 시류스베리는 지난 20년간 트럭 운전사로 일했으나 사고로 부상을 당한 뒤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 55세인 그는 영구 장애연금을 신청할 수도 있었지만 일하기를 원했다. 사회의 비생산적 구성원으로 전락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개리는 취업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굿윌 콜럼버스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고,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지금은 사설 경비원으로 근무한다.
봉급은 트럭 운전기사로 일할 때에 비해 25%나 깎였지만 그는 “세계 최고의 직업을 가졌다”고 입버릇처럼 자랑한다.
쟝애인 근로자들에게 주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을 합하면 실제 소득은 이전의 봉급 수준과 거의 맞먹는다.
굿윌 콜럼버스는 장애인과 전과자, 또는 취업 부적격자들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고 있다.
현지의 노동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굿윌 컬럼버스는 지난해 404명에게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2012년의 344명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굿윌의 인력개발 국장인 제니퍼 마샬은 “구직자들의 교섭력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굿윌이 지난해 일자리를 찾아준 근로자들의 평균 페이는 시간당 9.74달러로 2012년 취업자의 9.75달러와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컬럼버스와 그 이외의 많은 광역도시들의 실업률은 실직 공포의 수위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실업률은 제법 빠르게 하락하고 있지만 일터로 복귀할 가능성이 영영 없을지 모른다는 실직자들의 공포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비영리 인력개발기구인 센트럴 오하이오 웍포스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사 수잔 콜먼-톨버트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근로환경으로 복귀하기를 원한다”며 “이들은 아무리 낮은 임금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점차 자신감을 얻은 구직자들이 일자리 물색에 나서면서 임금도 조금씩이나마 상승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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