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 운동은 주로 동네 하이킹이다. 몸 이곳저곳의 아우성 소리를 조금씩 알아듣게 되면서 주말에 하던 등산 강도를 줄이게 되었다. 점점 총기가 흐려지는 것도 동네 하이킹으로 돌아서는데 한 몫을 했지 싶다. 약속을 잊어버려 실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말만이라도 약속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에 눈이 떠지는 대로 그리고 준비되는 대로 혼자 동네 공원으로 나서는 편한 맛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혼자만의 동네 하이킹에 익숙해지자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곤한 저녁 나들이 대신 주말에 하이킹이랑 간단한 식사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물론 약속은 언제나 변경이나 취소가 가능하도록 서로 양해를 하고 말이다. 좋게 말하면 ‘유연성’이고, 잘못하면 ‘제 멋대로’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엔 조금 특별하게 헌팅턴 라이브러리/가든/갤러리에 갔다. 오랜만에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약속을 잡다보니 친구한테 멤버십이 있어서 헌팅턴 나들이를 해보기로 했다.
거의 십년만이지 싶다. 그 세월만큼 더욱 다양해진 볼거리가 가득 마련되어 있었다. 도서관, 미술관은 물론 특히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게 가꾸어진 각종 정원들은 대충 둘러보기에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번 방문에서 특히 눈에 뜨인 것은 일본 정원 옆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중국 정원이었다. 2008년에 오픈을 했단다. 그런데 전에 일본 정원만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중국정원까지 들어선 것을 보니 새삼 동아시아에서 한국만 빠져있다는 아쉬움이 스쳤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 아쉬움에 왠지 모를 짜증이 얹혀졌다. “이상한 뉴스거리에서 말고 이런 곳에서 ‘Korea’라는 글자를 만나면 얼마나 좋아?” 라며 친구랑 투덜거렸다.
그런데 우리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 헌팅턴 라이브러리를 다녀온 직후부터 한국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관한 얘기들이 한층 심각해졌다.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메르스 강국, 메르스 공화국이라느니, 병명을 메르스(MERS) 대신 코르스 (KORS)로 바꿔야 한다느니 하는 그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으로 도망 온 중국 범죄자가 메르스 공포에 중국으로 되돌아갔다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했더니 드디어 뉴욕 타임스 만평으로 등장했다. 남한의 메르스가 무서워 탈북자들이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인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김정은의 손에는 남한의 메르스 발생 기사가 들려있고, 그 옆에서 망원경으로 철조망 건너를 지켜보던 간부가 어이없다는 듯 “탈북자들이 다시 도망오는 데요…” 한다.
세월호에 이어 이번엔 메르스가 연속 홈런으로 대한민국의 망신살 홍보대사 노릇을 하고 있나 싶었다. 물론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데다 멀리서 일어나는 일이니 네티즌들의 자극적 입방아나 만평에 쓸데없이 민감해 질수도 있을 것이고 뉴스들에 휘둘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같은 보통사람들이고 대중이다.
나 자신의 경우를 보더라도 내 몸이 이상하다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겨우 문제들에 대한 이런 저런 방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대중의 공포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어느 판사의 신문 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위험에 대응하는 전문가 집단은 냉철한 과학적 태도를 견지하되,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두려움을 존중하고 솔직하게 대화하며 안심시킬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정치 지도자라는 직업군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얘기한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한국정원이 생기지 않아도 좋다. OECD 최악이라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노인 빈곤율이나 자살률 등이 적어도 최악에서는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월호나 메르스와 같은 갑작스런 사건을 맞았을 때 제대로 대응하는 시스템들을 보며 멋지다 자랑스럽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선은 메르스 감염 사태의 깔끔한 마무리 소식부터 기대해 본다. 멀리서 너무 많이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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