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다.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 연휴는 할리웃의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주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6.25동란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됐고 LA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도 이산가족이 많다.
전쟁은 인간애와 희생 그리고 갈등과 액션 등 극적 요소가 많아 할리웃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오스카 작품상을 탄 ‘윙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시즈 미니버’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패튼’ ‘디어 헌터’ ‘플래툰’ 및 ‘허트 라커’ 등은 다 전쟁영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2차 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롯해 이락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역대 여러 전쟁에 관한 훌륭한 영화를 만든 것에 비하면 3만3,000여명에 이르는 전사자와 9만2,0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낸 한국전에 관한 뛰어난 영화는 극히 미미하다.
한국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이 감독하고 앨란 앨다가 주연한 ‘매쉬’(M.A.S.H.)로 이 영화는 한국전에 파견된 미군 이동 외과병원에 관한 블랙 코미디다. 그러나 ‘매쉬’는 영화보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인기 TV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 그런데 LA에서 찍은 시리즈는 한국과 한국인을 엿장수 마음대로 식으로 묘사해 미주 한인들의 집단항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할리웃이 한국전에 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 전쟁이 2차 대전 직후에 일어나 이미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2차 대전 영화에 물린 관객들이 더 이상 전쟁영화를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와 함께 한국전 참전군인들은 대부분 2차 대전 참전용사들로 이들 세대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제한전쟁인 한국전보다는 선이 악을 이긴 세계적인 2차 대전을 기억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전은 또 2차 대전의 위대한 야망과 TV로 중계된 베트남전의 생생한 현장감이 모두 결여돼 할리웃의 홀대를 받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을 다룬 영화들 중에 볼만한 것들도 더러 있다. 먼저 둘 다 터프가이 감독 새뮤얼 풀러가 만든 ‘철모’(The Steel Helmet)와 ‘착검’(Fixed Bayonets)은 모두 강력하고 긴박감 있고 또 치열하며 인간성 있는 영화들로 ‘착검’에는 제임스 딘이 단역으로 나온다.
그레고리 펙이 소대장으로 나온 ‘포크 찹 힐’(Pork Chop Hill)도 준수한 한국전 영화다. 휴전 직전 서로들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무모한 고지전을 벌이는 얘기로 실화다. 걸작 반전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만든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했다.
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가 나온 ‘원한의 도곡리 다리’(The Bridges at Toko-Ri)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으로 북한 땅에 불시착한 뒤 탈출하려다가 인민군에 의해 사살된 미 공군 파일럿의 얘기다. 그런데 홀든은 제니퍼 존스와 공연한 애정영화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에서는 홍콩 주재 미 기자로 한국전을 취재하다가 순직, 한국전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은 셈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 제트기 파일럿에 관한 또 다른 영화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공연한 ‘헌터즈’(The Hunters)가 있다. 그리고 역시 미치너의 소설이 원전인 ‘사요나라’(Sayonara)에서는 말론 브랜도가 한국전 참전 파일럿으로 나와 전쟁은 안 하고 일본 무대배우와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다.
록 허드슨이 주연한 ‘전송가’(Battle Hymn·사진)는 실화여서 한국인들에겐 남다른 감회가 있다. 지난 3월 97세로 사망한 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린 딘 헤스 미 공군대령의 얘기로 여기서 말론 브랜도의 전 부인인 인도계 안나 카쉬피가 한복을 입은 한국 여인 양은순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이 나온다.
한국전에 참전, 중공군의 포로가 돼 세뇌를 당한 뒤 귀국한 미군의 정치인 암살시도를 그린 ‘만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하는 좋은 정치 스릴러다.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에 관한 영화로는 그레고리 펙이 나온 ‘맥아더’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온 ‘오 인천!’이 있는데 ‘맥아더’가 훨씬 낫다.
이밖에도 볼만한 것들로는 로버트 라이언이 나온 ‘전쟁의 사나이들’(Men in War)과 장진호 후퇴를 그린 ‘지옥 철수’(Retreat Hell) 그리고 실제로 한국전에 영국군 소총수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지옥의 한국’(Hell in Korea)과 앨란 래드와 시드니 포이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모든 젊은이들’(All the Young Men) 및 로버트 레드포드가 육군 졸병으로 나온 ‘전쟁 사냥꾼’(War Hunt) 등이 있다. TCM 채널에서는 23~25일 32편의 전쟁영화를 마라톤 방영한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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