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워렌 버핏이 재산의 거의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미국 사회에 대한 감사가 있다. 자신이 이룩한 엄청난 부는 따지고 보면 1930년, 최고의 나라 미국에서 태어난 덕분이라는 것이다. 만약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났다면 달리기도 잘 못하는 자신은 일찌감치 사자 밥이 되었을 수 있고, 제3세계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잘 해야 시골 장터에서 사과나 팔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없는 조건으로 인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면 ‘미국 출생’은 일단 행운이다. ‘인생 로토’ 당첨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다고 모두가 같은 조건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면서 미국에서 대단히 중요한 조건은 인종이다. 버핏이 흑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어도 지금 같은 성공이 가능했을 지는 의문이다.
또 한사람이 죽었다. 일주일 전만해도 죽음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을 50세의 건강한 남성이 11일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평소 농담을 즐기고 춤추기를 좋아했다는 월터 스캇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는 자동차 관리 소홀. 낡은 자동차의 후미 등이 깨져 있어서 도로교통법 위반 검문을 받았다. 두 번째 잘못은 경관이 잠시 순찰차로 간 사이 도주를 시도한 것. 전 부인과 사이의 자녀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있던 터라 기소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두 잘못으로 인한 대가가 너무 컸다. 그의 목숨이었다. 지난 4일 아침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 찰스턴에서 흑인남성 스캇은 백인경관 마이클 슬레이거가 쏜 총에 맞아 절명했다. 도망가는 스캇의 등을 겨냥해 경관은 8발을 쏘았고 그중 5발이 맞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총을 쏘았다”고 보고했던 경관은 인근에 있던 한 청년이 셀폰으로 녹화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다.
흑인 커뮤니티의 분노는 지금 하늘을 찌를 기세다. 지난해 퍼거슨 사태 이후 너무 유사한 사건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 왔다. “스캇이 백인이었어도 경관이 그렇게 총을 쏘았겠는가?”라는 흑인 커뮤니티의 울분에 대해 시장도 경찰당국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현재 대통령도 법무장관도 흑인이지만 흑인남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남아공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만델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흑인사회는 천지개벽의 희망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극소수의 특출한 흑인들이 고위직에 진출했을 뿐 대부분 흑인들의 밑바닥 삶은 여전했다. 그래서 그 사회를 ‘카푸치노’에 빗대곤 했다. 검은색의 두터운 하층부에 흰색 상층부 그리고 위에 검정색이 간간이 뿌려진 모양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식 역시 ‘카푸치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인 주류사회에서 극소수의 흑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하층부를 차지하는 흑인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후 반년 쯤 지났을 때였다. 하버드 대학의 한 교수가 자기 집에 들어가려다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헨리 루이스 게이츠라는 이 교수는 중국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지를 않았다.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가 침입을 시도했었는지, 열쇠가 말을 듣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흑인남성이라는 사실이었다. 고급 동네에서 웬 흑인남성이 문을 열려고 애를 쓰니 당장 도둑으로 의심을 받았다.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관은 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고, 도둑으로 몰린 집주인은 분을 참지 못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경관은 그가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를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했다.
마침 그 교수를 잘 아는 오바마는 미국사회에 만연한 인종문제를 언급하며 백인 경관의 행동을 ‘어리석다’고 비판했다가 경찰 측으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 경관은 마땅히 해야 할 임무를 수행한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오바마는 흑인 교수와 백인 경관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함께 맥주를 마심으로써 얽히고설킨 앙금을 수습했다.
이후 경관과 가까워진 교수는 “(나를) 체포만 안하면 참 호감이 가는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알고 나면 얼마든지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얼굴색’ 때문에 총을 겨누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모두의 속에 뿌리박힌 차별 의식이 이 사회의 대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회에서 인종이 ‘운명’이 되는 한 비극은 계속된다. 그 비극이 어느 날 날카로운 개인적 아픔이 될 수 있는 운명에서 우리 모두 벗어날 수가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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