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라스트 해머 블로우’(The Last Hammer Blow)는 ‘비극적’이라는 부제가 붙은 말러의 방대한 교향곡 제6번이 플롯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검소하고 온화한 드라마다. 10년 전에 자기를 버리고 떠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아버지 새뮤엘과 13세난 아들 빅터와의 관계의 연결을 다룬 소년의 성장기로 이 관계 연결의 촉매구실을 하는 것이 이 교향곡이다.
암을 앓는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는 빅터가 사는 몽펠리에에서 이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해 오래간만에 도시를 찾아온 새뮤엘은 자기를 만나러온 생면부지이다시피 한 빅터에게 교향곡 제6번의 CD를 주면서 들으면서 느낌을 적으라고 이른다.
며칠 후 새뮤엘이 빅터에게 소감을 묻자 빅터는 대뜸 “길다”라고 대답한다. 그래 맞다. 교향곡 제6번은 참으로 길다. 7일 디즈니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LA필이 연주한 제6번은 휴게시간 없이 장장 75분이 계속됐다.
새뮤엘은 리허설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이 음악이 비극적이라고 해서 훌쩍훌쩍 우는 것은 아니다”면서 “스트레스가 큰 음악”이라고 교향곡의 성질을 설명한다. 그래 맞다, 영육을 스트레스로 질끈 동여매는 음악이다. 그런 스트레스 끝에 느끼는 융성한 기쁨은 가히 마조키스틱하다고 해도 좋겠다. 이어 새뮤엘은 플룻과 클라리넷과 오보 연주자들에게 보다 부드럽고 물 흐르듯 연주하라고 지시한다.
고전과 현대가 혼합된 제6번은 세기말 병 환자요 염세주의자이며 운명론자인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어둡고 비극적이며 또 염세적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음악이 그가 매우 행복했던 때 작곡됐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알마와 결혼해 첫 딸 마리아를 낳고 자신의 음악도 점점 많이 연주되고 또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비엔나 오페라의 공연도 내리 히트를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말러가 1906년 5월 이 곡을 독일의 에센에서 초연한지 1년 안에 4세난 마리아가 죽고 알마의 부정이 밝혀지고 비엔나 오페라와도 결별하는가 하면 자신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러가 이 음악에서 자기 미래를 예견했다고들 한다.
말러의 이 같은 운명론은 이 교향곡의 장렬한 제4악장 후반부에 사용되는 떡메 같은 커다란 해머의 두 차례의 강타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말러는 마치 타격에 의해 큰 나무가 쓰러지듯 영웅의 종말을 상상했다고 하는데 따라서 교향곡 제6번은 말러의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해머 타격은 원래 세 차례였는데 후에 말러가 둘로 고쳤다. 이에 대해 영화의 빅터는 “말러가 세 번째 타격을 지운 것은 자기 운명을 피하고 또 무시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고 성숙한 해설을 한다.
제4악장과 함께 군대의 행진곡 풍으로 시작되는 제1악장을 지휘하는 두다멜은 다소 놀랍게도 사납도록 강건하고 우람찼다. 타악기와 금관악기가 천둥번개를 치고 하늘의 승전가를 연주하듯 눈부신데 나는 말러의 제4악장의 금관악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느낌을 겪곤 한다.
나는 말러의 음악을 생각하면 헤세의 글이 떠오르곤 한다. 둘 다 자연과 산책을 사랑했는데 둘 다 자연이 자신들의 작품에 큰 영감을 제공했다. 교향곡 제6번의 서정미 그윽한 제2악장은 헤세의 ‘페터 카멘진트’를 연상시키는 말러의 풍경화다.
말러는 교향곡 제6번을 1903년과 1904년 뜨거운 여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마이에르니크의 뵈르터제 호숫가의 오두막(사진)에서 작곡했는데 제2 악장에는그가 즐긴 숲속 산책과 함께 오두막 창으로 내다본 자연의 풍광에서 얻었을 악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뭉게구름이 함박꽃 피듯 피어오르고 산새가 지저귀며 푸른 숲이 숱 많은 머리를 풀어헤치면서 바람이 불면 호수가 잔잔한 물결을 규칙적으로 일으키고 멀리서는 워낭 소리가 딸랑딸랑하고 반향을 불러온다.
꿀빛 부드러움과 피곤한 영혼을 위무하는 듯한 멜로디와 하모니가 고즈럭이 아름답다. 물감 대신 음표로 그린 평화로운 풍경화다. 두다멜은 마치 연인을 끌어안고 애무하듯이 정성들여 아륵하게 지휘했는데 음악에 취한 듯이 보였다. 빈 틈 없는 지휘다.
그러나 교향곡의 뿌리는 제4악장에 있다고 하겠다. 오케스트라 뒷좌석에 앉은 청중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지켜본 떡메가 마치 천둥번개의 신 토르가 망치 내려치듯 하는 소리를 내는 마지막 악장은 첩첩산중의 압력으로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거대한 무게와도 같다. 감정이 채 다 감당 못할 정도로 크고 장엄하다. 말러의 운명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운명을 통고하는 결연하고 치열한 종말이다. 절정에 이르렀다 아래로 내리 곤두박질치듯 허무하다.
내 몸을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오케스트라 쪽으로 몸을 내밀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음악이다. 이상하게 두다멜의 팬이 못된 나로서는 장쾌하고 맵시 있는 그의 지휘를 오래간만에 즐겼다. 그리고 음악은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영화 속 새뮤엘의 말이 떠올랐다. 말러의 제6번 교향곡은 이달 말 LA 필의 아주 순회공연 때 한국에서도 연주된다.
*‘주말 산책’은 기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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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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