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숨어 있는 노래가 있다. 발음부터 부드러워 가슴팍에 감겨오는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그렇다. ‘아리랑’에는 무언가 모태로부터 질기게 연결되어 있는 끈끈한 사랑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아리랑’의 가사 어디쯤에는 우리의 삶이 있고, 그 곡조의 행간에는 우리의 혼이 있다. 임을 영접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고, 그리워하면서 원망하면서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우리 모두의 노래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무심코 TV를 켰더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낯익은 곡조가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간장이 끊어질 듯한 애조를 품은 바이올린 연주였다.
그때는 미국에서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였으니 분명 미국영화였다. 놀랍게도 일본 게이샤가 매력적으로 긴 목을 과시하듯 머리를 높이 빗어 올리고 하얀 하오리를 입은 채 고요한 밤에 무릎을 살포시 꿇고 일본의 전통적인 쇼지문을 여는 장면이었다. 그녀의 동작 자체가 이미 한 폭의 시였다.
저 장면에서 아리랑이 연주 되다니, 번지수가 틀려도 단단히 틀려 있었다. 신기하기도하고, 내 것을 누구에게 빼앗긴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해서 가슴이 퉁퉁거리다가 일본에 대한 분노 같은것까지 동원되어 혼란에 빠졌던 일이 있었다.
영화는 ‘아리랑’의 첫 부분만을 계속 반복하면서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혹여 그 영화감독이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인상 깊은 ‘아리랑’의 첫 소절만을 기억하고 어느 나라 곡인 줄도 모르고 영화에 삽입시켰을까? 아니면 재일 한국인들이 부르다가 일본인들에 전파되어 친숙해졌을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연이야 어떻든 ‘아리랑’이 우주 끝 외진 곳에서 불려진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불러야 할 우리의 노래다. 우리의 소울 뮤직이다. ‘아리랑’은 우리의 한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부를 수가 없다. 한에 절여진 피를 받은 한국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아리랑’이 품고 있는 애절함의 마디마디를 모르는 타민족은 흉내를 낼 수는 있으되 그 진수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천년 역사의 뿌리에서 뽑아낸 ‘아리랑’이라는 민요가 풍기는 알 듯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함, 어떻든 꼭 우리 것 같기 만한 여운, 거기에 다양한 가사, 어쩌면 우리는 ‘아리랑’이라는 노래 가락을 몸에 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분노와 슬픔과 소망까지, 그리고도, 또 열거해야겠다. 신명나는 어깨춤, 환희와 익살과 은유와 고백의 진한 핏자국이 스며 있다. 불러도 불러도 싫증나지 않는 ‘아리랑’, 너무나 진부해서 팽개치고 싶은 옛것이지만 갈수록 반갑고 새로운 노래가 ‘아리랑’이다.
나는 운전 중 졸음이 오면 신나는 ‘진도 아리랑’을 부른다. 잠을 깨워 주는 ‘아리랑, 위험에서 지켜주는 ‘아리랑, 그 속에 숨은 흥겨움과 낭만, 한국의 영원한 히트곡 ‘아리랑’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육체는 없고 영혼만 있는 무형의 것, 그러나 불멸의 것이다. 그 노래에는 밭을 매는 아낙이 있고 농부가 있고 낭군을 기다리는 꽃 같은 색시가 있고 댕기머리 처녀의 첫사랑이 있고 손에 잡히는 우리네의 어려운 살림살이가 있다.
삼대 아리랑은 밀양아리랑(경상도), 진도아리랑(전라도 ), 정선아리랑(강원도)이다. 현재 전승되는 아리랑의 종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문가들은 60여종에 3,600여수에 달한다고 한다. 아리랑은 2012년 12월5일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아리랑은 현대로 오면서 희망의 노래가 되어가고 있고 지역과 세대를 초월하고 있다. 일제 때는 저항의 의미로, 독재치하에서는 민주화의 염원으로, 월드컵 때는 응원가가 되기도 했다. 삶의 애환이 녹아 우리의 혼이 되는 노래, 품었던 흥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앓고 있는 속울음이 새어나온 것 같기도 한 뼛속 깊은 노래, 땀이며 눈물이며 한숨이며 희망이기도 한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구원한 영감의 근원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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