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머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한 법”이라고 걱정스러워도 하셨지만, 시절이 달라져서 이제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강조되는 세상이다. 시간 있을 때마다 소설은 물론 드라마, 영화에 빠져 정신 못차리던 나는 요즘 (글의 소재를 찾는답시고)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인터넷 커뮤니티의 경우 댓글을 읽는 즐거움까지 있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 것은 연애에 관련된 이런저런 사연들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남녀의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의 감정, 즉 연애감정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지만, 뜻밖에도 연애에 기반한 결혼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지 않다. 서양에서도 연애결혼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가 본격 성장하기 시작한 19세기부터라고 하는데, 아마도 귀족계급의 몰락과 상공인 계층의 대두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을 통해 신문물과 자유연애 사상이 쏟아져 들어 왔다. 그러니까 한국의 청춘남녀들에게 (은근한 연애 감정 말고) 자유의지가 포함된 연애 행위가 도입된 것은 채 1세기가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격동의 근세사를 거쳐온 한민족인 만큼 연애의 풍속도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사연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 전체가 연애 강박증에 빠져 있는 듯하다. 매스컴들은 끊임없이 연애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연애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모자란 사람’이거나 그 사회의 ‘루저’가 된 듯하다. 이들은 연애학원이라도 다니면서 뒤처진 진도를 따라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이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는 ‘연애 칼럼니스트’들이 탑 스타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직도 연애를 꿈꾸며 상담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 이른바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 세대에게는 연애도 사치이다. 한 세대 전 여성들에게는 연애 상대가 ‘가난한 집 장남’인 것이 고민이었다면, 지금 세대에서는 가난한 집 장남이 연애하는 사건 따위는 결코 현실에서 일어날 수가 없단다. 연애도 스펙에 의해 좌우되고, 연애 역시 계층을 세분화하는 스펙의 한 요소가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연인들은 더욱 들뜨고 꽃집과 초컬릿 가게들은 대목을 누리겠지만, 이런 날 더욱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을 젊은이들에게 마음에 쓰인다.
먼저 이들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올바른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래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찾기 전에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먼저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남들과의 비교를 그치고, 자신이 출발한 곳에서부터 얼마나 왔는지를 돌아보라고 일러주고 싶다.
그 다음에는 연애를 부추기는 세상과는 조금 거리를 두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는 연애를 부추기는 세상이 자신들의 잇속과 얼마나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지를 조금만 살펴본다면 가능한 일이다. 청춘남녀가 연애를 함으로써 소비의 촉진이 얼마나 가열차게 이루어질 것인지 생각해 보라. 가깝게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부터 식당, 영화관, 화장품, 심지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상들이 그대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연애 혐오주의자는 아니다.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청춘남녀들이 자본주의 상술에 놀아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지금 이 나이까지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본, 소위 말하는 ‘모태 솔로’들에게 스스로를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다.
건강한 자존감이 첫째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당당히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설사 못 만나게 되면 또 어떤가. 솔로들도 얼마든지 세상을 즐기며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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