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쁜이’ 라는 이름보다 ‘못난이’라는 이름에 더 정이 간다. 예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 소망이라는데 ‘못난이’라는 이름이 좋다니 좀 억지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이다. ‘못난이’ 라는 이름은 귀여워서 금방 웃음이 난다. 거기에는 우선 수다스러움이 없어서 좋다. 유머러스하고 해악적이며 예쁘다는 말보다 더 짙은 사랑스러움이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이웃집에서 담살이를 하던 아이 이름이 ‘못난이’였다. 언제나 칙칙한 무명치마에 땟국이 지르르 흐르는 무명 저고리를 입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 그 집에 들어왔었는데 처녀꼴이 나게 커서 뚱뚱해졌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담살이 주제에 대우를 받을 수야 없겠지만 대가족이 사는 집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중을 들려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싱글벙글 웃었고 우리 집에 들르기를 좋아했다. 목침 같은 얼굴에 머리카락도 가늘고 머리의 빛깔까지도 볼품이 없었다. 눈은 부처님 눈 같이 길었다. 어느 구석 잘 생긴 데라고는 없어서 붙여진 별명이 이름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천사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어린 날 만났던 ‘못난이’ 처럼 착한 사람을 만나본 일이 없다. 예뻐서 당당한 오만함 보다 못난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며 곱게 지켜가는 겸손함이 얼마나 더 진솔한가. 흔히 그런 애들이 버릇처럼 쫑알대며 주인집 흉을 보는 경우가 허다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더더구나 일하기가 힘들다는 불평 한마디 할 줄을 몰랐다.
지금 나는 그 못난이의 진실을 설명할 길이 없어 아쉽다. 서럽고 고독한 자신을 지탱해준 강렬한 에너지를 못난이는 묵묵히 착하게 사는데 두었던 것일까? 못난이는 고아로서 길 잃은 어린 양이었지만 외로움을 스스로 치유하고 살아간 용사였을지도 모른다. 불평도 한탄도 모르던 아름다운 사람, 자기의 하루에 감사하며 생글거리는 못난이가 정말 보고 싶다. 질그릇 속에 보배가 담겨 있는 것처럼, 허술한 차림에 감싸여 있었으나 못난이의 내심은 별빛이었다.
창밖에 머리 풀고 서 있는 것 같은 큰 뽕나무의 푸른 잎들이 간밤에 노랗게 물들고 키 큰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푹신하게 쌓인 뜰을 보면서 웬일로 못난이가 생각나는 것일까?낙엽은 예쁘고 색도 곱다. 나무에서 막 떨어진 낙엽이 쌓여있으면 싱싱한 생선비늘 같다. 낙엽이 일단 땅에 떨어질라치면 빛깔만 변하나 싶다가 갑작스럽게 수분을 잃고 메말라서 도르르 말리고 손만 데어도 바스러져 가루가 될 것 같은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못난이’로 변신한 진하디 진한 갈색 낙엽들은 바람이 불면 뭐가 그리도 급한지 오종종종 모두 함께 떠밀려 급하게 어디론가 굴러가는 모습에 나는 놀라곤 한다.
운전 중 차 앞에서 무엇에 쫓기는 듯 갈 길을 찾느라 분주하게 달려가는 낙엽 떼를 만나면 속도를 늦추고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는다. 그 싱싱했던 생명체의 여운이 땅바닥에서 저토록 급하게 구르다니... 마지막 가는 길에 저를 보내는 이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부피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것일까?
낙엽의 내면은 찬란했던 날의 추억과, 가을을 수채화처럼 꾸몄던 기억을 도르르 말아 안고 바람에 미련 없이 떠나간다. 꽃이 만발했을 때 이미 짧은 영광의 순간을 알고 소멸을 예비 했고 한여름 짙푸른 생명력을 과시할 때 한줌 흙으로 화해버리기 위한 훗날의 준비를 철저히 마친 모양이다.
지구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없어진 것 같으나 원소는 그대로다. 바닷물로 구름으로 증기로 눈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강물이었다가 풀이었다가 꽃이었다가 피어 있다가 낙화였다가...
나는 지금 낙엽을 보면서 그 옛날 못난이를 추억하며 못난이처럼 못난 대로 착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이 퍼 올려주는, 내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며 나의 고통과 희열의 공통점, 거기에서 어떤 창조가 잉태될 것을 기대하며 이 가을을 훌훌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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