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nk asked Joshu, "Does a dog have Buddha nature?" Joshu replied, "MU!"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선사가 답했다. "없다!"일찌기 석가모니 붓다는 중생 속엔 누구나 불성(佛性)이 들어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느니라! All sentient beings have Buddha Nature! 그래서 붓다의 자녀인 불자(佛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성불(成佛)하세요."그런데, 소위 깨달음의 정점에 머무는 스님으로 잘 알려진 조주선사는 석가모니 붓다의 선언을 일언지하에 뭉개버립니다. 모든 존재가 그 안에 불성을 갖고 있다면 개 또한 예외는 아닐 터! 그래서, 공부 깨나 했다는 스님 한분이 짐짓 알면서도 모른 척 ‘개도 불성이 있나요?’라는 우문(愚問)을 던진 건데, 천하의 조주선사께서는 먼산 바라보며 불쑥 ‘개는 불성이 없지!’라고 단박에 자르고 계십니다.
이뭣고!선가(禪家)의 문답은 바늘로 하늘 찌르기입니다. 풍선을 찌르면 바람이라도 터져 나오건만, 하늘은 찌를 수도 없으려니와 설령 찔렀다 해도 무득입니다. 그래도, 계속 찌릅니다. 그래도, 계속 묻고 답합니다. 늘 우문이고, 늘 동문서답입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똥막대기니라. 부처가 뭡니까? 혹시 만나거든 당장 죽여 버려라! 부처가 뭡니까? [아직도 못 알아 듣느냐면서] 몽둥이로 후려 팹니다. [이 미련한 중놈아 하면서] 고함을 냅다 지릅니다. 그렇게 ... 선문답은 지금도 이어지는 중입니다. 입 다무시고 그저 차나 한 잔 하고 가시라며 또 소리 지릅니다. 끽다거(喫茶去)!
A monk asked Joshu, "Does a dog have Buddha nature?" Joshu replied, "MU!"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선사가 답했다. "없다!"붓다를 믿을 것인가 조주를 믿을 것인가, 이렇게 둘 가운데 서성이면 이미 그른 일입니다. 선문답의 요체는 ‘둘’[duality]을 뛰어 넘는데 있습니다. 둘 다 아니면서 또한 둘 다인 것입니다. 둘 다 틀리고 둘 다 맞습니다. 그러면, 무슨 말장난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또 한번 그르치게 됩니다.
여기 서양식 선(禪)불교의 공안(公案)[koan]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묻습니다. "부처에게도 견성(犬性)이 있는가?" 누가 답합니다. "없다![MU!]"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화두나 부처에게 개의 성품이 없다는 화두나 말도 안되는 격(格)으론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Does a buddha have Dog Nature? "MU!" 결국 …… "오직 모를 뿐!"입니다. Only Don’t Know!
A monk asked Joshu, "Does a dog have Buddha nature?" Joshu replied, "MU!"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선사가 답했다. "없다!"하얗고 보드라우며 앙증맞고 영리한 말티즈[Maltese] 강아지 한분과 같이 산 지도 어느덧 한 해가 지났습니다. 요즘은 이 녀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는데, 아침 산보하면서 규칙적으로 배설하는 것으로 시작해, 오피스에서 가만히 참고 주인의 일상에 최소의 존재로 머물며, 식사 때마다 환희작약하고, 밤이 되어 잘 때가 되면 알아서 길게 자 주는 녀석이 꽤 기특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불필요한 유흥이나 오락에는 별 관심이 없고 늘 같은 음식 외의 그 어떤 식도락도 즐기지 않습니다.
책상에 앉아 뭔가 쪼물딱거리며 일하는 주인 발 옆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코골며 자는 녀석은 딱히 믿고 지니는 종교 같은 건 없어 보입니다. 어제의 후회나 내일의 걱정 따위도 없어 보입니다. 때맞춰 입에 들어오는 양식에 전존재가 기뻐 어쩔줄 모르며, 내일 먹을 양식을 창고에 비축하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만나면 그렇게도 반가운지 사랑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주인[주님]을 철저히 믿고 따르는 자세, 거의 감동, 거의 감격적입니다. 무조건 믿고 따릅니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며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순종이요 무조건 믿습니다. 가히 배우고 따라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석가는 있다 했고 조주는 없다 했지만, 저는 "반드시 있다?"입니다. 차라리, 부처에게도 견성(犬性)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보다 슬기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Does a buddha have Dog Nature? Maybe? 혹시 그럴 수도?뜰 앞의 잣나무나 똥 막대가 부처 안에 어찌 ‘견성(犬性)’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부질없는 동문서답을 물리면서, 말티즈 강아지를 보살피는 가운데 언듯언듯 깨달아지는 생각 중 하나는, 이분이 저를 많이 깨우치고 계시다는 겁니다. 과연, 견성(犬性)안에도 불성이 있는 걸까요? 아니, 불성 안에도 과연 견성이 있지 않을까요?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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