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에서 13일까지 우리 내외와 딸네 식구 다섯이 합친 일곱식구가 멕시코의 관광도시인 카보 산 루카스를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그곳을 마지막 다녀왔던 때가 벌써 십년 가까이 되었다. 그 세월동안 이 작은 도시는 굉장히 변해서 크루스가 정박하던 해변가를 빼놓고는 거의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샌디에고에서 남쪽으로 바하 캘리포니아를 일천마일 가량 달리면 제일 남단에 있는 항구 도시가 바로 카보 산 루카스라는 곳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세시간을 날아가면 되는 비교적 짧은 거리에 있어서인지 미국인 관광객이 제일 많아 보였다. 이 도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고기를 잡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한다. 1950년대 배우였던 에바 가드너와 빙 크로스비, 존 웨인들이 다녀가면서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제법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관광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오성급 호텔로 언덕 위에 세워져서 바다를 내려다 보게 되어 있었고, 방방마다 바다 경치가 일품이었고, 발코니에서 보이는 짓푸른 바다와 멕시코풍의 건물들의 모습이 기암 절벽들과 어우러져 절경이었다. 야자수 나무들이 가까이 있어서 손만 뻗으면 코코넛 열매를 딸 수 있을 것 같아 신기했다.
오후에 호텔에 도착한 우리들은 앞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좋은 일 후엔 꼭 마가 낀다는 말처럼 다음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갑자기 남편이 심한 어지러움증으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전날 떠나올 때부터 남편의 상태가 약간 의심스럽긴 했었다.
마침 호텔에 남미계의 여의사가 있어서 왕진을 왔고,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극심한 탈수 상태였기 때문에 그 여의사가 손수 운전을 해서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고, 곧 바로 아이비를 맞고 피 검사도 하고 했는데 원래 심부전증 환자인 남편의 심장 상태는 마치 금방이라도 심장마비가 생길 듯 급박했다는 것이다. 그 의사들은 하루쯤 병원에 묵으라고 권했지만 남편의 완강한 반대로 아이비 주사만 두대 맞고 밤 열시에 호텔로 돌아왔다. 비용이 무려 삼천 팔백불이 나왔다.
이번에 남편을 살린 사람은 딸이었다. 내가 만약 혼자였다면 아마 하루 이틀 경과를 보자고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탈수증이 그렇게 사람을 잡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다음날 딸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렉스! 네 아빠는 이번에 네가 살렸다. 땡큐! 그렇지만 가끔 난 네 아빠가 불쌍하면서도 얄미울 때가 있단다. 일생을 술을 먹고 담배도 피우면서 잘 운동도 하지 않아 밷가이(bad guy)로 산 것이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잘못이잖아. 난 그점이 마음에 안든단다" 이렇게 말하자 딸은 대뜸 "엄마! 바로 그점이 엄마와 내가 다른 점이야. 나는 피를 나눈 천륜이기에 그냥 대디가 불쌍하기만 해. 엄마는 사실 남남이잖아? 그래서 엄마는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해도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거야."
딸의 차가운 대답에 난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해도 헤어지면 남남일수 밖에 없는 관계가 바로 부부 관계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그 연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죽음으로 밖에 없다. 난 딸아이의 똑부러지는 정의에 할말이 없었다.
원래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수영장가에 앉아 여섯살짜리와 이제 곧 네살이 되는 니코를 보는 것만도 어느땐 너무 더워서 지겹긴 해도, 사람들만 보고 있어도 이곳은 심심치 않는 곳이기에 그런대로 지낼만 했지만 남편은 꼬박 일주일을 아무리 경치 좋은 방에 있다해도 나가지를 못하고 죽치고 방에만 있는 것이 딱하기만 했다.
텔레비전도 몇개 채널만 있어서 맨날 씨엔엔(cnn) 뉴스와 집과 정원이라는 여자들이 보는 프로그램만 보고 있자니 아마 짜증이 났겠지만 참는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라 불평도 못하고 그냥 견딘 것 같다.
이곳 호텔은 좀 외진 곳에 있어서 시내로 나가자면 무조건 택시비가 미국돈 15불 가량이 들어서 나와 딸애는 수백불의 택시값을 썼다. 또 택시 운전사나 벨보이나 룸서비스맨이나 맨날 나가는 팁도 만만찮은 가격이어서 정말 이곳에서 미국인들은 봉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새벽마다 한적한 바닷가를 산책했다. 이곳은 파도가 세서 수영이 금지된 곳이다. 어쩐지 내가 떠나온 곳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멀리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교회 식구들이 그리워졌다. 정말 여행이란 떠나오면 집이 생각나고, 내가 맨날 먹는 음식들이 얼마나 사람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위인 스티브가 떠나기전 멕시코의 해변을 한번 가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치를 찾았다. 그곳에서 멕시칸 부부가 여섯명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영복도 제대로 못입은 아이들이 얼마나 깔깔대고 웃으면서 행복해 하는지 그 해맑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으면서도 행복한 아이들과 너무 많이 가졌으면서도 항상 불평이고 짜증을 잘 내는 우리 손주들이 비교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방글라데시가 뽑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인생의 행복은 가지고 못가진 것에 있지 않고 각자 마음 속에 달려 있다는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아침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니코가 말했다. "제일 재미 있었던 것은 돌고래와 함께 한 수영이었다"고.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집이 너무 멀다"고. 벌써 네살짜리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은 바로 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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